=====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채식" 베이킹과 제과제빵에 대한 오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때 채식 베이킹이 아니거나, 그렇더라도 썩 건강한 건 아닐 확률도 만만치 않은 식빵)

채식 베이킹이 유행이라고 한다. 서점에서도 만만치 않은 종류의 관련 요리책을 찾아볼 수 있다. 건강이 화두다 보니 이제는 베이킹에도 ‘채식’을 붙이는 현실이다. 일종의 의무적인 관심-직업정신에 기댄-으로 채식 또는 자연식 베이킹을 표방하는 카페 또는 제과점의 빵을 먹어보았다. 또 비슷한 컨셉트를 가지고 두부로 만든다는 대기업의 도너츠 또한 먹어보았다. 또한 몇몇 인기를 얻고 있다는 관련 책들 또한 들여다보았다. 그를 바탕으로 채식 베이킹과 제과제빵에 얽힌 몇 가지 오해, 또는 잘못된 생각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1. 채식 베이킹에서 ‘베이킹’은 어떤 빵류를 대상으로 삼는가?
개인적으로는 베이킹에 ‘채식’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조차 그다지 이치에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베이킹은 기본적으로 채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식사빵’이라는 사실 얼토당토 않은 명칭으로 불리는 빵 종류는 사실 기본적으로 채식 베이킹의 산물이다. 제빵의 가장 기본재료 즉, 밀가루, 소금, 이스트, 그리고 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원래 베이킹의 정수는 이러한 발효빵을 만드는 것이고, 이 재료만으로도 놀랄만큼 맛있는 빵을 구울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빵인 바게트나, 이탈리아의 대표빵인 치아바타 모두 저 4대 재료만으로 구운 것이다. 그 나머지를 책임지는 것은 빵 장인의 손길과 감각이다. 베이킹은 과학이라서 엄격한 계량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이스트라는 생명체를 다뤄야만 하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레시피로 빵을 구워도 온도나 습도 등등에 따라 아주 미세한 조절이 필요하다. 이를 책임져 늘 같은 맛과 식감의 빵을 굽는 것이 빵 장인의 능력이다. 

이렇게 최소한의 재료와 장인의 감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빵은 만들기가 다른 빵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의 ‘간식빵’ 문화가 넘어와 발달해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빵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채식 베이킹의 대상 또한 이러한 종류의 빵이 아니다. 흔히 퀵브레드(quick bread)'라고 부르는, 이스트로 시간을 들여 부풀리는 대신 베이킹 파우더나 소다로 바로 부풀리는 머핀이나 비스킷류, 아니면 쿠키나 파이 등등의 과자류다. 어떤 것은 베이킹이고 또 다른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편파적일지 몰라도, 이러한 종류의 베이킹에서 들어가는 몇몇 동물성 재료를 식물성으로 대체하고 채식 베이킹이라고 부르는 것이 베이킹 자체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지는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렵다. 애초에 그런 종류의 베이킹이 아니라면 구태여 베이킹에까지 ‘채식’의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 

2. 무엇을 위해 대체하는가?
당연하게도 건강 문제이다. 우유와 계란, 그리고 동물성 지방을 대체하는 것이 채식 베이킹의 목표인 듯 보인다. 이러한 재료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논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 큰 그림을 보면서 건강과의 관계에 대해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채식 베이킹의 대상은 대부분 설탕, 그도 아니면 어떤 식의 당과 버터가 아니더라도 식물성 지방이 들어가는, 단맛 나는 빵과자류이다. 설사 식물성 재료를 썼다고 해도 칼로리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의 식습관을 고려해볼 때 식사 대체품은 될 수 없으니, 당연히 간식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종류의, 탄수화물과 지방 위주의 고열량 단과자류는 동물성 재료를 쓰나 식물성을 쓰나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물론 나도 채식이든 육식이든 이러한 종류의 단과자류 먹는 걸 어느 정도 즐기는 편이지만, 맛을 즐기기 위해서 먹지 건강을 위해서 먹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음식은 태생 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먹으면서 건강까지 챙기는 식으로 두 마리 새는 잡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진짜 건강을 생각한다면 채식이든 육식이든 이런 종류의 단과자류 섭취를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 또한 이런 종류의 식습관은 현대인이 먹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에 해당된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나쳐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또한 원론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식사빵‘은 단과자빵보다 열량도 낮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염두에 둘 필요도 있다. 담백한 맛을 표방하는 식빵조차도 원재료 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은 합성지방(버터 대체품)이나 설탕을 넣었다. 식감이 좋아지거나 단맛이 두드러져 입에 “붙게”만들기 위해서이다. 프랜차이즈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거의 대부분의, 그리고 드문 개인 빵집에서도 물과 밀가루, 소금과 이스트만으로 만든 빵을 내놓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책임은 빵보다 첨가 재료 맛으로 빵을 먹는 소비자에게도 일정 부분 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빵을 못 먹어봤으니 그런 것도 당연하기도 하다. 진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3. 제과제빵 이론의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지식 전달
책을 낸다는 것은 권위를 상징한다. 인쇄물로 남는 기록의 특성이다.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자신의 레시피를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최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채식 베이킹 책들을 들춰보면 그러한 부분에서 굉장히 부족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베이킹은 과학인데도, 아마추어의 방법론을 과학적인 검증 없이 제시한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채식 베이킹 책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성 기름의 사용법이다. 파이나 타르트 껍데기(크러스트)를 예로 들어보자. “육식” 베이킹에서 이러한 크러스트를 만들 때 “상온에 있두었지만 차가운” 버터를 쓰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고체 상태의 지방을 밀가루 사이사이에 채워 넣으면, 오븐에 넣었을 때 열에 의해 버터에 있던 수분이 증발되고 그 자리가 비게 된다. 이러한 공간이 파이 껍데기의 바삭바삭함을 불어넣는 것이다. 크로아상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바삭바삭함은 액체상태의 지방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이러한 과학적인 지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든 채식 베이킹 레시피의 파이 껍데기는 식물성 기름으로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든다. 그저 흉내 내는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파이 껍데기의 본질은 이룰 수 없다. 이를테면 열악한 대체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채식 베이킹을 통해서도 이러한 파이 껍데기를 만들 수 있기는 하다. 원래 액체여야만 하지만 현대과학의 도움으로 상온에서도 고체상태를 유지하는 식물성 경화유를 쓰면 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마가린이 바로 식물성 경화유다. 물론 쇼트닝도 있다. 건강을 생각하는 채식 베이킹이니만큼 이런 재료라면 손사래를 칠 것이다. 쿠키나 머핀 등을 구울 때도 마찬가지다. 이루고자 하는 식감에 따라 같은 버터라도 완전히 녹여 액체로 만들거나 아니면 마요네즈와 같은 상태의 ‘크림화’를 이뤄 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베이킹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책들에서 그러한 흔적을 엿볼 수 없다. 무작정 설탕의 양을 줄인다거나, 아가베 시럽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대체품을 쓰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 맛 또는 식감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많은 채식 베이킹 레시피에서 두부 사용을 권장한다. 바른 용어는 아니지만 일종의 ‘볼륨감’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기름에 노릇노릇 지져 파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찍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맥주 또는 막걸리 안주인 두부는, 베이킹에 쓰면 이 뒷면에 달라붙는 찐득찐득한 식감을 선사한다. 

5. 채식에 얽힌 엘리트주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아니고도 많은 사람들이 ‘키배’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귀찮아서라도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그래도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원형보다 한참 열등한 대체품이 우등한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은 슬프다. 아직도 죽지 않은 채식과 엘리트주의의 관계가 베이킹에도 스며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예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신체 조건 또는 특수 유전 질환 등으로 특정 재료 또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셀리악 병(Celiac Disease)' 환자는 밀가루의 글루텐을 소화흡수하지 못해 설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빵이 주식인 서양의 경우에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질환이라서 글루텐이 들어가지 않는 베이킹의 레시피가 보다 더 체계적으로, 조리과학에 바탕을 두고 개발된다. 검증받은 빵 장인이 개발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미국에서 살 때 호기심에 이런 제품들도 종종 먹어보았으나 절대 원형보다 나은 대체품은 될 수 없었다. 원형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므로 그 부분을 거세한 대체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채식 베이킹 또한 그러한 특성의 대체품으로 인식한다. 특정 질환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웰빙‘ 또는 건강 상태를 걱정한다면 이러한 음식을 아예 먹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열등한 대체품을 먹으면 맛도 없으면서 칼로리는 칼로리대로 섭취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채식 베이킹의 일부분이 민간요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