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용재의 건축과 음식 사이

매운맛의 폭력

어느 식당에서 아주 맛있는 오이 소박이를 먹은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맛있는 김치-평범하게 무나 배추로 담근-을 먹는 것도 어려워졌지만, 오이소박이를 먹는 건 정말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오이들이 금방 물러버리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담근지 며칠 만에 물러버리는 오이까지 살릴 수는 없다. 


이때 먹은 오이김치는 구운 조개 관자와 함께 나온 것이었다. 잘 익은 김치의 상큼함이 역시 잘 구운 조개 관자의 “느끼함(사실 그다지 느끼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대부분 느끼하다고 생각한다)”을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그래서 둘의 궁합은 훌륭했으나, 김치 자체가 너무 매워 균형이 살짝 깨지는 것이 옥의 티였다. 식사를 마치고 셰프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그 정도로 매운 김치를 원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워낙 매운 맛을 좋아하는지라 고춧가루도 그런 품종들 밖에는 구할 수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 집의 식탁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머니의 김치는 이북과 충청도의 영향을 골고루 받아서, 딱히 맵거나 짜지 않았다. 내가 가끔 흉내 내서 담그는 김치 또한 비교적 표준화 되었다고 믿는 레시피를 참고로 하는 것이라 기본적으로 썩 맵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해인가부터 예년의 것들보다 더 매운 고춧가루 밖에 살 수 없게 되면서, 김치맛도 변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썩 짜지는 않지만, 매워서 많이 먹기는 어려워졌다. 고춧가루를 바꾸고 싶지만 외가 쪽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적게 넣는 것 외에는 매운 맛을 조절할 길이 없어졌다. 

매운맛이 유행이라고들 한다. 근데 이러한 이야기조차 너무 오래된 터라, 딱히 매운맛이 예전, 그러니까 10년쯤 전보다 더 유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균형을 깨는 매운맛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찜닭’이라는 것이 나왔을 때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이 대단한 취급을 받고 유행이 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호기심에 먹었을 때의 그 매운맛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간장을 바탕으로 한 양념이라 매워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맵다니! 같이 나오는 반찬들 또한 딱히 매운맛을 가셔줄만한 것들이 아니어서 식사는 고통스러웠고, 그 뒤로는 아마 거의 찜닭을 다시 먹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온통 재개발중이라 기억도 잘 안 나는 무교동의 낙지집 또한, 왜 얼마 안 되는 낙지를 그렇게 뻘건 양념에 파묻어서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먹고 난 뒤의 개운함? 음식 먹은 만큼 물을 마셔야 되는데 속이 개운할 리가 없지 않나? 

사실 요즘 유행하는 매운맛 음식들을 보면 찜닭이나 낚지볶음 정도는 애교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매운맛의 영역은 거의 차력에 가깝다. 그래서 ‘완식(이 말조차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을 하면 빈 그릇을 들고 'V‘자를 그린 ‘인증샷’을 찍어 가게 벽의 명예의 전당이나 블로그에 자랑스럽게 올리게 되는 것인가? 해병대 캠프라도 다녀온 듯한, 극기의 흔적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많이들 하는 이야기라 되풀이하기도 지겹지만, 사실 매운맛은 맛도 아니다. 미각이 아니라 통각(痛覺)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바늘로 혀를 찔러서 아픈 것이나, 매운 고추를 먹어서 혀가 아픈 건 원인이 다를지언정 그 결과는 같다. 그러나 스스로 혀를 찌르는 사람은 없어도, 쓸데없는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말도 안 되게 매운 음식의 ‘완식’ 도전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꽤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매운 짬뽕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유행이 되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매운맛은 맛이 아니므로 이런 종류의 쓸데없이 매운 음식을 내놓는 가게에 ‘맛집’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건 아예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사실 문제는 매운맛 자체보다, 그 맛의 원천이다. 이 또한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렇게 폭력적으로 매운 맛의 원천은 수입산 싸구려 캡사이신 액이다. 궁금한 사람이라면 인터넷에서 ‘캡사이신액’으로 검색을 하면 된다. 가격도 아주 저렴하다. 아마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천편일률적으로 폭력적인 매운맛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싸구려 수입산 캡사이신 액에 의지하는 매운맛이 우리 고유의 맛인 것 마냥 착각하는 현실이다. 검색으로 찾아 들어간 모 국회의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매운맛으로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 잡아야”라는 요지의 글을 보았다. 직접 쓴 것인지 아니면 어디에서 긁어온 것인지. 거기까지 확인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지만, 외국에 우리의 맛을 알려야 한다며 뉴욕에조차 여기에서 재료를 공수해서 음식을 만든다고 난리 법석을 떨지만 정작 우리맛이라는 이 매운맛은 수입산 캡사이신 액이 책임진다. 

사실 혀가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픈 것 말고, 매운맛 자체가 딱히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위나 장에 궤양을 일으킬 염려도 사실은 없으며, 적당히 매운맛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유불급,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매운맛은 그렇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렇게 매운맛을 내세우는 가게들의 음식은 간이 거의 맞지 않는다. 매운맛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간을 맞추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짠 음식이 건강에 나쁘다는 손님의 성화에 간을 약하게 하거나 거의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럼 짠 건 나쁘고, 이렇게 매운 건 괜찮은가?

어쨌든 우리는 이런 음식을 먹고 산다. 우리는 미각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다들 비싼 돈을 내고 맛도 성의도 없이 만든 음식을 먹고 살면서, 그게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터부시한다. 우리 음식의 맛을 완전히 뒤덮어버린 매운맛과 단맛도 우리의 미각을 마비시키는 주범들이다. 어차피 이런 맛이 우리 고유의 맛도 아니고, 또 고유의 맛이라고 해도 수입산 싸구려 캡사이신 액이 책임지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맛으로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자는 이야기는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낯부끄럽다. 나는 이빨로 버스를 끄는, 뭐 그런 것들만 차력인줄 알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