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

(2) 건축가 문훈

ㆍ사람들의 욕망과 필요로 생겨난 서울의 디자인 좋다고 느껴



사진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출처: 경향DB)




▲ “지하철이 없어졌다고 가정하고

그곳을 나이트클럽이나 운하로 만들고 싶어요.

상상을 실현해보는 거, 재밌잖아요?”


■ 무거운 남자의 가벼움에 대하여


건축가를 좋아한다. 만약 누군가 내게 남자로 다시 태어나 해보고 싶은 일을 묻는다면 별 망설임 없이 건축가라고 말할 것 같다. 그들이 건축물에 쓰이는 다양한 나무와 돌과 흙에 해박하고, 공무원과 건축주, 시공업자들과 저돌적으로 싸워야 할 때를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들과 끝내 타협해야 할 지점을 안다는 것도 맘에 든다. 고요한 사무실과 시끄러운 현장 사이를 오가는 그들에게서 나는 뛰어난 균형감각들을 보았다. 내가 아는 건축가들은 수학을 알고 있는 시인이다. 건축가를 좋아하는 나만의 편견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자신의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내 오래된 습성이었다.


사실 이 인터뷰는 어이없는 나의 난청으로 시작되었다. 누군가 내게 ‘남훈’을 추천해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덜컥 ‘문훈’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문훈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가 건축가라는 것과 이단아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그가 왜 건축계의 이단아일 수밖에 없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상상 사진관’ ‘S마할’ ‘정선 테일’과 ‘옹달샘’ 등 그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그는 자신의 전생을 뱀파이어라고 생각한 건축주를 위해 혼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계단을 만들고, 스페인을 사랑한 건축주에게 투우를 연상시키는 뿔이 달린 건물을 지어주었다.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비상하거나, 바람이 불면 움직이거나, 사람의 몸무게에 따라 출렁이고, 물에 조응한다. 그는 ‘건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편견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대체 바람과 구름과 비와 몸무게에 반응하는 건물이란 건 어떤 것인가.


■ “안되는 게 어딨어요? 안 하는 거지!”


영감은 이런저런 분야를 수박 겉 핥기 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문훈에게 만약 사과와 라일락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과는 먹고, 라일락은 향기를 맡아야죠!” 그에겐 향기의 성분을 분석하고, 수백페이지짜리 사과의 품종과 당도에 관련된 논문을 써내는 서양식 논법이 맞지 않는다. 그의 졸업논문 ‘Beyond opposite’은 동호대교 위에 화장장과 호텔을 함께 설치한 프로젝트다. 죽은 자를 태워 생기는 열과 에너지로 연인들의 공간인 호텔을 가동시키는, 이른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방식을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모교인 MIT를 ‘미아리 텍사스 대학!’이라고 말할 땐 동양의 선과 불교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식 사고에 대한 가벼운 조롱과 유희가 느껴졌다.


문훈은 어느 곳도 아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커피숍을 내고 싶다고 상상하는 기이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게 될 그의 엘리베이터는 26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몇 호, 몇 호’로 불리는 익명의 사람들을 친교라는 이름으로 묶어줄 것이다. 2005년 문훈은 친구와 함께 지하철 안에 소파를 옮겨놓고 도시를 여행하는 실험을 했다. 장소를 바꾸는 요소가 소파 같은 ‘가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첫 번째 아이디어였다. 문훈에게 공간은 규정되거나 한정된 무엇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하철이 없어졌다고 가정하고 그는 그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상상했다. “나이트클럽이나, 운하, 거대한 수영장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문훈의 프로젝트와 믿기 힘든 말라깽이 시절이 담긴 이 잡지는 창간과 동시에 폐간되었다. “사라진 잡지의 아트디렉터로 일했었어요. 망하긴 했지만 상상을 실현해보는 거, 재밌잖아요?” 그런 그에게 남향으로 창을 내어달라고 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남향만 좋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창문을 꼭 사각형으로만 내야 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에서 유년기를 보낸 문훈은 사람보다 장소를 더 오래 그리워하는 아이로 자랐다. 텅스텐을 처리하기 위해 내뿜는 지독한 암모니아 가스 냄새와 하늘을 온통 검게 메우던 상동의 공장들, 지구의 종말을 보는 듯한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던 그는 지질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호주의 낙원 같은 태즈매니아 섬에서 예민한 사춘기를 보냈다. 세기말 풍경과 지상낙원의 풍경 모두를 체험한 소년은 그렇게 건축가로 성장했다.


“안되는 게 어딨어? 안 하는 거지!”를 신조로 삼은 문훈은 건축가는 신중하고 조용하다는 내 편견 하나를 깼다. 빨간색 티셔츠가 자신을 섹시하게 만든다고 믿는 그는 빨간색 라벨이 붙은 중국 술을 마시며 인터뷰를 하다가 내게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피자 시킬까요?” (나는 당연히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만약 내가 집을 짓게 된다면 마당에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심어 그해에 수확한 열매로 잼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말하자 “마침 좋은 잼이 있는데! 드릴까요?”라고 말하더니 잽싸게 달려가 어디선가 잼 두 병을 들고 나타났다. 이토록 산만하고 명랑한 40대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 40년쯤 살아보면 알게 될 일이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내 첫 번째 질문은 의문이라기 보단 감탄사에 가까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사는 게 즐거운가요? 정말 많이 웃으시네요!”


“원래 인생이 비극적이잖아요. 비극을 희극으로 마스킹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조커처럼 보는 것일 수도 있겠죠.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why so serious? 뭐 이러는 것처럼.”


그가 히스 레저처럼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건축을 포함한 모든 분야가 신성을 찾을 수 있죠. 하지만 그걸 건축주 앞에서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중요한 걸 몰라서가 아니라 중요함을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죠. 저는 건축가들이 자꾸 헛소리를 하는 것 같거든요. 무슨 모던 아키텍트라든지 자기랑 관련 없는 사조를 자꾸 얘기하잖아요. 전 제가 좋아하는 얘기만 해요. 제가 스타워즈를 좋아하니까 그 비슷하게 한다든가, 나에서 출발하는 거죠. 서양의 건축도 한국의 건축도 아니고 내가 파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려고 하니까 건축계에서 보면 그래 너 잘났다, 뭐 그렇게 얘기를 하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으니까. 뭐 그렇다고 건축주가 무시하는 게 아니거든요. 영어식으로 얘기하면 down to earth고,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소박한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이 자꾸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왜 꼭 데카르트랑 들뢰즈를 알아야 돼요?”


언젠가 소설가 천명관이 일간지 인터뷰에서 요즘 평론가들의 ‘라깡대고 지젝거리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말한 장면이 떠올라 폭소가 터졌다.


“전 제가 정신분열증이래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여럿 있는데 하나가 우위에 있진 않은 거예요. 분열증의 문제는 하나가 주인이 되면 나머지가 싸우고 방랑하고 그런 건데 저 같은 경우는 그게 없을 것 같아요. 여러 성격을 가져도 다 공평한 거예요. 구조가 없는 거죠. 물렁뼈로 돼 있다고 생각하면 되죠. 문어처럼. 성도 문씨잖아요.”


■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의 쾌감


문훈은 언젠가 자신의 건축을 ‘액션 건축’ ‘BE급 건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두 ‘움직인다’라는 동사에 수렴되는 말들이다. 나는 그가 고정된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들이 궁금했다.


“저는 반응하는 반응체로서의 건축에 관심이 가요.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하잖아요. 멀리서 보면 살아 있는 거 같은 거죠. 저는 바람 맞는 걸 좋아해요. 여자한테 바람 맞는 것도 좋아하고! 기계적 장치를 써서 뭔가를 할 수 있겠죠. 화전민의 집이나 공장처럼 연기가 난달지. 또 다른 방법은 부드러운 재료를 쓰는 거죠. 외로운 남자가 벽에 기대면 벽이 들어가면서 남자를 감싸주는 거예요. 뭔가 움직이는 거지. 건축은 딱딱하고 영원불멸성을 추구하는데 제가 그걸 바꾸려고 하는 거죠. 자꾸 이륙하려고 하고, 건물은 땅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걸 거부하려고 하고. 그래서 창을 갖고 다양한 시선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광각이나 착시를 이용하는 것도 좋아하고, 계단 페티시일 만큼 계단을 이용해 실험해 보는 것도 좋아하죠.”


안도 다다오 같은 건축가는 계단으로 건축물의 인상을 만들어낸다. 문훈이 만든 ‘파노라마하우스’에도 책장 높이에 맞춘 40센티미터 계단이 있다. 그는 “앉아보니 40센티미터 높이가 아이들이 벤치처럼 앉아 있기에도 좋고, 어른에게도 편한 높이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조경란의 <백화점>에서 가구디자이너들이 물건을 사용할 사람들의 행동패턴과 사회적 거리를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 ‘숨겨진 치수’라는 말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포옹이나 속삭임을 위한 친밀함의 거리는 15.2~45.7㎝, 친한 친구간의 상호작용을 위한 개인적 거리는 0.45~1.21m, 공적인 대화를 위한 거리는 3.65m 이상’이라는 식이다. 나는 문훈에게 그가 발견한 건축적 치수에 대해 물었다.


“아주 기본적인 수치는 있을 거예요. 계단을 만들 때 20㎝ 미만으로 유지하려고 해요. 22㎝만 되도 불편해요. 경험치가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것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단을 5㎝, 2m로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이를테면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욕실의 세면대를 튼튼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는 겁니다. 침실에서만 사랑을 나눈다는 건 너무 빤하잖아요.”


그에게 농담처럼 러브호텔을 지으면 아주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한테 완벽하게 맞는 배역이 있으면 제가 더 뜨겠죠. 저는 하기 힘든 일을 하잖아요. 주택도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고. 근데 반대로 재밌어야 할 때 그렇게 안 할 수도 있죠. 어떤 건축가가 신전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주택도 신전처럼 지어요. 라이브러리를 지어도 신전처럼 숭고하게 짓겠죠. 전 얼핏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게 재밌어요.” 자신의 사무실 정중앙에 빨간색 ‘정자’를 들여놓은 것도 건축사무실이 너무 건축사무실 같아 보이는 게 싫어서다. 그는 무조건적인 ‘담’ 없애기 운동에도 반대한다. 마음이 닫힌 사람은 차라리 담을 세우고, 마음을 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가 스코틀랜드나 몽골의 초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건물도 없어 뭐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고, 서울의 디자인이 좋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단계에 진입한 선진국이 건축적으로 더 많은 자유가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유럽이 아직 유년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건축에 비해 제한된 것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외적인 인물은 건축계의 슈퍼스타 몇 명 정도일 거라고 말이다.


“그중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도 있죠. 전 그걸 자하의 ‘똥’이라고 불러요. 위에서 보면 정말 똥처럼 보이거든요. 하하.”


언젠가 나는 명망 있는 전문가들이 의외의 선택을 한다는 아이러니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요리사는 라면을 즐겨 먹었고, 유명 편집자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사표를 낸다. 아파트의 대안으로 몰아닥친 땅콩집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문훈은 아이러니하게도 왕십리 근처의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와이프가 서울에 살고 싶어 하고, 편하니까 살아요. 하지만 시공사가 돈을 많이 남겨야 하는 자본의 논리 때문에 모든 아파트가 박스형 구조로 희생된 건 문제죠. 빌트인 가구라는 것도 아파트를 짓는 브랜드와 관련되어 발달했다고 봐요. 가령 냉장고가 자꾸 커지면 썩는 음식만 생기거든요. 냉장고는 얇고 넓은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야 바로 보이니까. 깊으면 안 보이고 음식이 썩어도 모르게 되요. 안 보이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에게 집집마다 베란다가 사라지고, ‘몰딩’ 같은 과도한 인테리어 요소가 등장한 것이나, 아파트의 설계도에 맞춰 발달한 한국의 인테리어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건축을 설계한 건축가가 모든 인테리어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마당을 지붕 없는 실내 공간으로 보고 실내와 실외의 관계나 마당과 옆집 사이의 관계, 그 사이의 공간까지를 조율하며 설계하는 게 건축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문훈 문훈건축발전소 소장 (출처 :경향DB)


■ “그냥 재밌으면 하는 거예요. 나를 방목하는 거죠”


“원하기만 하면 전 사는 분들이 입었으면 좋겠는 옷까지 디자인해 드릴 수 있어요. 이 위치에 서 있으면 안 됩니다, 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이런 인터뷰가 건축 수주에는 도움이 안 돼요. 건축주들은 진지한 건축가를 선호하거든요, 벌써 이단아라고 하면 저 사람 좀 불안정한 거 아냐, 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걸 고민하느니 저는 그냥 재밌으면 하는 거예요. 나를 방목하는 거죠.”


이쯤에서 문훈에 대한 오해 하나를 해명해야겠다. 그의 건축물들은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기발한 집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되었다. 2005년 그의 건축물 ‘상상사진관’은 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그는 재미와 상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거 제가 낸 것도 아니었어요. 아는 사람이 냈는데, 덜컥 된 거지”라고 말하는 그 무심함이 부럽기도, 얄밉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건축가에게 집을 의뢰하러 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화장하는 것이 귀찮아 늘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나는 비밀스러운 개인 도서관을 꿈꾸었다. 인생의 80퍼센트 이상을 눕거나, 엎드려서 보내는 나 같은 사람이 원하는 건 게으름이 모던하게 흘러넘치는 안온한 집. 그러므로 티비는 천장에 붙어 있고, 해가 뜨면 유리로 만든 천장이 선글라스처럼 변하며, 어둠이 밀려들면 바깥의 별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지는 풍광을 원했다. 도서관에는 책상이나 의자 대신 밤새 책을 읽다가 잠들 수 있는 코끼리처럼 큰 침대가 놓여 있길 원했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아주 게으를 수 있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버튼만 누르면 집이 기울어서 굴러서 내려오고, 계단과 책장이 움직이고.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안 되는 거 없어요. 그 자체가 감동적일 거예요. 일주일 동안은! 근데 싫을 수도 있어요. 완벽할 순 없는 거고, 부족함을 남겨놓는 게 맞는 거겠죠. 뭐든지 완성되지 않는 것에 열광하잖아요, 마릴린 먼로도 일찍 죽었고 제임스 딘도 그렇고, 사람들이 미완성 교향곡 좋아하고 그런 거 보면 완성되지 않은 그 나머지 부분의 상상 때문에 재밌어지는 거잖아요. 건축도 그런 거죠. 이 집은 벽도 반듯하지 않게 만들어야겠네요. 아! 집 이름이 떠올랐어요. 일명 떼굴떼굴 하우스! 하하.”


얼마 전 그는 유명 티비쇼에 나와 특유의 ‘성공론’으로 단박에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문훈은 점점 더 섹시해지고 있고 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달랑 직원 세 명을 이끄는 건축가이다. 그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지은 떼굴떼굴 하우스에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당장 하기 싫은 일을 다섯 가지 이상 해야만 하는 내 처지를 생각했다. “오늘 할 일을 최대한 내일로 미루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다가 인터뷰 중 그가 시킨 피자를 보며 편견 하나가 깨지고 말았다. 누가 봐도 고기만 먹을 것 같은 육식주의자 풍모의 그가 토핑으로 스테이크가 촘촘히 박힌 피자 대신 샐러드를 먹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야채예요!” 그런 그의 얼굴이 봄날의 상추처럼 순해보였다.


백영옥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