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N포 세대의 로맨스

한 온라인 취업포털에서 5포 세대들이 성별에 따라 어떤 순위로 포기하는가를 조사한 적 있다. 남자들은 결혼을 가장 많이 포기했고, 여자들은 출산을 가장 많이 포기했다. 남자 2위는 연애, 여자 2위는 결혼. 이후 내 집 마련, 연애, 인간관계 등이 이어졌는데, 가만 보면 다섯 가지 중 무려 네 가지가 ‘사랑’과 관련이 있다. 연애가 가장 기본적이라면 사실 그 연애의 사회적 결실 중 하나가 결혼이고, 출산 역시 필수는 아니지만 결혼의 결실 중 하나이니 말이다. 내 집 마련이 결혼의 조건 중 하나라는 것을 돌이켜 보자면, 결국 5포 세대가 포기한 것은 바로 로맨스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N포 세대라니, 이제 연애는 무리이고 결혼은 사치인 시대가 되어 버린 셈이다.

 

영화 <소공녀>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솜(오른쪽)과 안재홍, 영화 <소공녀> 포스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에는 모두 열 한 개의 한국 영화가 상영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중 많은 작품들이 20대 젊은이들의 거주 문제, ‘집’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중 <소공녀>라는 작품에는 웃기고도 슬픈 장면 하나가 등장하는데, 그래도 방 한 칸이라도 가지고 살던 여자 주인공이 애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사랑을 나눈 지 너무 오래되었음을 깨닫는다. 허겁지겁 입고 있던 옷을 벗는 연인들, 그런데, 방 안인 것 치고 너무 많은 옷을 껴입고 있다. 대략 열 겹에 가까운 옷을 하나 둘씩 벗다 보니 둘의 몸에는 오소소 닭살이 돋고, 덜덜 떠는 지경이 되고 만다. 그들은 다시 한 두 겹씩 옷을 껴입으며, “우리 그냥 봄 되면 하자”라고 사랑을 미룬다. 방이 있다 해도, 난방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주인공은 그나마의 방도 포기하고 만다. 그녀는 가방 하나에 삶을 정리하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로 결심한다. 그래도 젊으니까 말이다.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이다. 아주 작은, 최소한의 방, 그 방도 허락되지 않은 젊음의 형편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부문의 영화 <이월(February)>의 형편은 좀 더 가혹하다. 밀린 월세에 보증금까지 모두 써 버린 민경은 공사장 주변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겨우 삶을 연명해 간다. 이월, 남은 추위가 뼛속까지 시려 오는 그 겨울에 민경은 다만 먹고, 잘 곳을 찾기 위해 매춘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춘과 로맨스 사이 그 얼마나 먼 것이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경은 그 간극에서라도 잠깐의 여유와 쉼을 얻는다. 그나마라는 부사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한국에서 가장 보기 힘든 장르가 바로 로맨스이다. 로맨스 영화의 황금기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기였음을 생각해보자면 경제적 호황과 로맨스의 부흥이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프리티 우먼>과 같은 조금은 비현실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부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같은 일상적 로맨스까지, <결혼이야기>에서 시작된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 열풍이 <광식이 동생 광태>와 같은 다층적 로맨스로 이어지기까지 만남과 연애, 사랑과 결혼은 영화의 매우 중요한 소재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영화의 제작 환경으로 따져보자면 <광식이 동생 광태>와 같은 영화들이 과연 제작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관객들은 이런 소소한 마음의 풍경이나 연애의 뒷모습보다는 <신세계>나 <범죄도시>처럼 잔혹한 세상에서 더 동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연애가 사치인 세상, 영화 속 연애나 결혼을 보고 대리만족할 수준을 넘어서 삶이 더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잔혹한 칼부림 영화에 싫증을 내면서도 사지가 썰리고, 칼이 난자하는 폭력적인 영화에 꾸준히 관객이 드는 것은, 차라리 비체험적 공간을 구매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실제 삶보다 훨씬 더 잔혹한 그러나 결국 해결의 카타르시스가 달콤하게 보상되는, 그런 세계를 사고 싶은 것은 아닐까?

 

로맨스 영화의 품귀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나 로맨스 영화를 강의할 때면 최근 영화들의 예시가 빈곤해짐을 느낀다. 워킹 타이틀사가 시도했던 조금 다른 로맨스 영화의 계보들도 2010년 이후엔 주춤하다. 어쩌면 <라라랜드>처럼 결국엔 새드 앤딩이 되는 사랑이야기나 <건축학개론>처럼 마침내 마음에 묻어 둬야 하는 첫사랑 이야기가 지금, 2010년대의 청춘에게는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상황에 로맨스라니.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이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고 썼다. 바람이 새는 풍선처럼 그렇게 허약한 우리에게 사랑은 격려이고, 무시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연애와 사랑만큼 ‘나’라는 사람의 가치 있음과 필요함을 주관적으로 확신으로 굳게 하는 체험이 또 있을까?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으로, 얼마나 우리는 큰 격려와 힘을 얻게 되던가? 결국 우리가 포기하고 사는 것은 이런 사랑과 그로 인한 따스한 체온들이다. 혐오와 분노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진 데에는 사랑의 부재와 결핍의 영향이 크다. 사랑 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확신하기엔 우린 너무 허약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