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무성영화 ‘아티스트’ 영화사의 오랜 질문 중의 하나. 만일 사운드가 1927년 10월6일 보다 10년만 늦게 도착했다면 세계영화사에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인가? 미학자들은 영화의 시각적 테크닉이 100년은 더 멀리 갔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루돌프 아른하임. 미디어 정치학자들은 영화를 나치가 선전으로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폴 비릴리오. 경제학자들은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그만큼 멀리 있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더글러스 고메리. 많은 영화감독들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토키영화에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채플린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나 그레타 가르보와 같은 신화적인 스타들은 순식간에 은퇴하거나 잊혀지거나 추락했다. 미셀 아자나비시우스의 는 반동적인 영화이다. 모두들 영화의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홀려.. 더보기
‘부러진 화살’의 과녁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다소 따분하지만 사건의 개요, 혹은 ‘영화 속의’ 사실관계. 김명호 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1995년 1월 본고사에 출제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그에 따른 반사적 불이익으로 승진에서 탈락한 이후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이듬해 2월 재임용에서 제외됐다. 이민을 떠났다가 2005년 1월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 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귀국해서 3월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그러나 9월 이 소송은 기각됐고, 2007년 1월에는 항소도 기각됐다. 김명호 전 교수는 1월15일 석궁을 들고 이 항소를 기각한 서울고법 민사 2부 박홍우 부장판사를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아.. 더보기
이 남자들 왜 불러낸 거야 나는 중얼거렸다. 이 남자들은 미친 게 아닐까? 나는 이 말을 나쁜 의도로 쓴 것이다. (첫번째 사진)을 본 다음 일주일이 지나 (두번째 사진)를 보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영화 제목 앞에 감독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내 관심은 이 남자들이다. 두 편의 영화 속의 세 명, 혹은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 정말 이상하게도 이 두 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같은 주인공(들)을 불러냈다. 아니, 차라리 서로의 주인공을 바꿔 쳐도 서로 다른 시대에서도 이 ‘남자’들은 동일한 믿음을 갖고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동시에 도착한 반복. 누가 이들을 불러낸 것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두 편의 영화. 우선 . 1987년 5월16일 잠실운동장에서 롯데 최동원(조승우)과 해태 선동.. 더보기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정성일|영화감독·평론가 두 사람의 스필버그가 있다. 한 사람은 B급영화의 감수성으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거의 자유자재로 오락영화를 만드는 ‘소년’ 스필버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백인 유태계 미국인의 고뇌를 부여안고 쩔쩔매는 ‘환자’ 스필버그이다. 우리는 둘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고갔다. 를 본 다음 을 보고, 을 본 다음 를 보았다. 둘 사이가 처음 화해를 한 영화는 였고, 은 존 포드가 웨스턴에서 해낸 것을 스필버그는 SF영화에서 해냈다. 두 편의 의심할 바 없는 걸작. 하지만 그는 재빨리 두 사람의 스필버그로 돌아왔다. 을 만든 다음 다시 을 만드는 사이클로 되돌아왔다. 나는 스필버그라는 이름 앞에 서면 다소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이하 ·사진)은 물론 B급영화광 스필버그의 영화이다. 1929년 벨기에.. 더보기
꿈결 같은 통속성, 희망 없는 아메리카 당신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별 이야기도 없으면서 예술영화인 척 허풍을 떠는 영화와 상투적인 이야기에 불과한데도 자기가 예술영화인 줄 아는 영화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느 쪽에 침을 뱉어야 할까. 나는 올해 칸영화제 황금 종려를 받은 테렌스 맬릭의 를 본 다음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어제 같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니컬러스 윈딩 레픈의 (사진)를 보면서 심사위원들의 난처함에 동의할 수 있었다. 물론 의 이미지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라면 영화관 대신 차라리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수없는 제스처들. 손짓의 단편들의 무더기. 그러나 단지 제스처들. 나뭇잎으로 시작해서 뿌리로 내려간 다음 지구의 기원에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 거의 정신분열에 가.. 더보기
부산국제영화제, 우리 운명처럼 만나자 10월6일 목요일 송일곤 감독의 을 개막작으로 부산국제영화가 시작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그 전날 비가 온 다음 부산은 맑은 후 흐림이라고 한다. 물론 해안가 날씨란 변덕스러워서 지금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가 처음 선을 보이는 해라서 날씨를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다. 먼발치에서 본 ‘야외의 전당’은 물 위로 올라온 커다란 고래처럼 보였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이를테면 칸영화제에서 첫 회는 아침 8시반에 시작한다(부산영화제는 대부분 10시 혹은 11시에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모두들 일제히 새벽에 일어난다. 그런 다음 세수를 하고 극장 앞으로 달려.. 더보기
북촌방향,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홍상수의 열두 번째 영화 을 보았다. 그냥 한마디로 이 영화는 괴상한 영화이다. 은 그의 네 번째 디지털 영화이자, 두 번째 흑백영화이다. 많은 사람은 홍상수의 영화가 매우 단순하고 단지 배우들의 역할이 바뀔 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나는 그걸 증명할 수 있다. 첫째, 열한 번째 영화 와 은 단지 서울을 무대로 겨울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영화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 둘째, 이 얼마나 이상한 이야기인지는 이 영화를 본 다음 줄거리를 써보면 안다. 그건 당신이 요령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홍상수는 촬영이 시작된 다음 매일 아침 그날의 날씨를 느끼면서 시나리오를 쓴다. 즉흥연주로 이어지는 라이브 녹음을 악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무리하.. 더보기
진정성의 반격 ‘아리랑’ 우리는 지금 세계와 나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찾고 싶다는 상실감의 회복을 간절하게 시도하고 있다.나는 ‘아리랑’이 우리 시대에 진정성의 반격을 알리는 희생양이라고 한숨 쉬듯이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을 당황시킬 생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진정성이라는 말을 꺼내들 생각이다. 진정성이라고?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설마! 아마도 당신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 말이 유행이 지나갔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게다가 이 말은 정의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오늘날 예술에서 조롱거리이거나 이따금 상대방을 비웃을 때만 사용될 뿐이다. 진정성에 대한 냉소주의는 지식인들 카페에서 종종 마주치는 잘난 체하는 에스프레소만큼이나 만연되어 있다. ‘진짜’ 세계라는 따위는 없어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