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방법’ 악귀는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가

내 최대 IT 기업 포레스트의 회장인 진종현(오른쪽)은 막강한 저주 능력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뒤 자본과 권력으로 이를 무마하는 인물이다. 방법사 소진은 초자연적 힘으로 그러한 ‘거악’ 진종현과 맞선다. <방법> 홈페이지 갈무리


tvN 월화드라마 <방법>은 어둠의 주술을 소재로 한 오컬트 드라마다. 연상호 감독이 처음 TV 드라마 각본을 맡아 방영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영화 <부산행>과 <염력>에서 각각 좀비 아포칼립스,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서구적 장르를 한국적 토양 위에 녹여냈던 그는 <방법>에서도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한 토종 오컬트를 시도한다. 작품의 제목인 ‘방법’은 저주로 사람을 해하는 주술을 뜻하는 무속 용어다. 드라마는 특정 인물의 한자 이름, 사진, 소지품만으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을 지닌 ‘방법사’ 백소진(정지소)과 정의감 넘치는 사회부 기자 임진희(엄지원)가 함께 힘을 합쳐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최근 TV에선 오컬트 드라마 붐이 일고 있다. OCN <손 the guest><작은 신의 아이들><빙의>, KBS <오늘의 탐정> 등이 몇 년 새 잇따라 방영됐다. <방법>은 제작진의 설명처럼 ‘십자가 없는 오컬트’ 드라마라는 점에서 독특하지만, 앞선 한국형 오컬트 드라마의 중요한 특징 역시 공유하고 있다. 이 장르에 속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호러 판타지적 소재를 범죄스릴러 문법에 가깝게 풀어낸다는 데 있다. 주요 인물 중 한 명은 형사나 탐정이고, 이들이 추적하는 대상은 어두운 사회 현실에서 자양분을 얻는 괴물들이다. 이들 작품 속에서 초자연적 힘으로 희생양들을 잔혹히 살해하는 악귀들은 기존 범죄스릴러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인 소시오패스형 악역들의 진화형과도 같다. 


<방법>은 이 같은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방법사 소진 옆에는 사회부 기자 진희와 베테랑 형사 정성준(정문성)이 있다. 소진이 초자연적 힘으로 ‘거악’ 진종현(성동일)과 맞설 때, 진희와 성준은 취재와 수사를 바탕으로 그의 범죄를 하나하나 조사해나간다. 국내 최대 IT 기업 포레스트의 회장인 진종현은 막강한 저주 능력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뒤 자본과 권력으로 이를 무마하는 인물이다. 그의 악행은 초자연적 힘을 제외하면 사회파 스릴러물 속 권력형 범죄자들의 행위와 유사하게 그려진다. 진종현의 측근인 상무 이환(김민재)도 폭력 조직을 동원해 적대적 인물들의 납치, 폭행을 주도하는 등 신문 사회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범죄자다.  


흥미로운 점은 진종현이 그의 회사 포레스트를 대기업으로 키운 비결에 있다. 평범한 SNS 업체였던 포레스트는 ‘저주의 숲’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크게 성장한다. 저주의 숲은 SNS에 해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 사진과 그에 대한 사연을 올리며 저주를 기원하는 일종의 태그 놀이다. 그 안에는 직장 내 갑질 피해자처럼 정말 억울한 사연도 있지만, “밤마다 샤우팅하는 이웃” 등 대화로 해결 가능한 문제들도 넘쳐난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사연도 많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진실이나 갈등 해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놀이처럼 클릭 한 번으로 사연에 쉽게 동의를 표하고 분노를 해소한 뒤 또 다른 저주 대상을 찾아 떠난다. 


기존의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소시오패스형 범죄자들이 출몰하게 된 배경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약화돼 가는 사회의 변화가 있었다. 가령 이 같은 장르적 경향을 주도한 SBS <싸인>은 당시 변화한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기업 임원의 ‘맷값 폭행’ 사건 재현을 통해 시대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최근의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 속에서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악귀들의 행동은 공감 불능이 더욱 악화된 혐오와 증오의 시대를 상징한다. 그런 면에서 악귀 진종현의 힘을 키운 저주의 숲이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기반한 놀이라는 점은 꽤 아이러니하다. <방법>의 ‘악’은 사회적 관계가 갈수록 단절되고 혐오가 확산되는 시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진종현과 소진의 결정적 차이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같은 저주의 주술을 사용하지만, 소진은 저주받는 이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 6회에서 방법할 때의 기분을 묻는 진희에게 소진은 그 인물에 ‘접속’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답한다. “그렇게 접속이 된 상태에서 저주를 보낼 때 이 세상에 나랑 그 대상하고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게 다 느껴진달까. 이 사람 완벽하게 악하진 않다 이런 게 느껴져서 괴롭기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아주 짧은 단편적인 꿈을 꾸는 거 같기도 하고, 말로 하기엔 힘든 느낌이에요. 그리고 방법당하는 사람도 자신을 방법하는 사람과 순간이지만 접속이 돼요. 그럼 그 사람의 원망 같은 게 느껴지는 거죠.” 소진의 ‘접속’은 악한 힘이 그녀를 잠식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최소한의 공감 능력일 것이다. <방법>은 갈수록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해가고 혐오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사회에 대한 탁월한 은유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