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봉준호 너머’ 새로운 봉준호를 기다리며

봉준호 감독이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를 바라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는 이미 상징이다. 봉준호는 끊임없이 스스로와 자신의 작업을 상징화해왔다. 봉준호 영화 속 대사들에는 유독 상징이 많다. 화제가 된 봉준호 수상 소감도 그저 의사전달에 그치지 않고 다른 메시지로 심화되고 확장된다. 그의 말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레이스 기간 동안 “상징”이라는 말을 몇 번 사용했는데, 그 맥락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한 번은 뉴욕 시사회장에서 본 쥐를 상징이라고 말한 장면이다. 봉준호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눈앞을 지나쳐 간 쥐를 가리켜 초현실적 행운의 상징이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수상 소감에서이다. 그는 외국어영화상이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뀐 것은 무척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외국(Foreign)에서 국제(International)로의 변화가 단순한 개명이 아니라 개혁임을 봉준호가 상징화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상징’은 기우의 단어이다. “넌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탄복을 받던 기우는, 막상 계획의 실현 단계에 이르자 계획보다는 상징에 기댄다. 아버지를 기사로 취업시키는 계획을 세우는 순간 기우는 그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하필 “기사식당”이라며 그 우연에 상징성을 부여한다. 우연에 상징을 기대는 것, 사실 그건 힘이 없는 자들, ‘을’의 습관이다. 계획대로 사는 것은 어느새 개인의 자아성취 영역보다는 환경적 결정 요소에 크게 좌우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스스로의 계획에 따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갑’이다. 갑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뒤바뀌는 을의 입장에서는 계획보다는 상징이나 징조가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만 보면, 아카데미 레이스 동안 봉준호는 갑이 아니라 ‘을’이었다. 봉준호는 “로컬영화” “자막영화” “장벽”이라는 완고한 선 너머, 할리우드의 관습 너머에 있었다. 관습이 관행이 되고 권위주의로 굳어지면 그게 바로 갑의 권력이다. 할리우드는 영화산업계의 절대 갑이었던 것이다.


봉준호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영화적 갑의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상징화하며 하나둘씩 무너뜨렸다. 할리우드를 “로컬”로 새로 규정했고 자막을 “장벽”으로 상징화했다. 봉준호는 품격 있는 상징을 통해 각축과 경쟁의 할리우드를 우애와 존경, 배려와 지지로 가득 찬 공간으로 다시 호명했다. 봉준호의 말을 통해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배우, 영감을 준 아내, 유려한 언어의 가교 역할을 했던 통역자까지 모두 전 세계의 공용어 “영화”로 묶인다. 봉준호의 말이 곧 믿음의 벨트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봉준호 그 이후 말이다. 봉준호가 상징이 되자마자 여기저기서 그 상징을 팔아먹으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다수의 언론사가 뒷배경이 되어 준 캠페인 매니저 이미경 부회장의 공을 높이 사며, 영화산업 수직계열화가 지닌 기존의 의미와 상징성을 이동시키려 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생가 터를 짓겠다, 조형물을 만들겠다며 상징을 천박한 상징물로 바꾸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정작, 나와야 할 이야기, 다음의, 새로운 봉준호가 등장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것을 돌아봐야 할지는 생략된 채, 봉준호라는 상징을 선점해 활용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그것은 봉준호라는 상징성의 도구적 사용에 불과하다. 그가 선사한 믿음의 벨트를 그렇게 써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봉준호가 될 수 있을 수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지키는 일이다. 2000년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 참패했다. 관객 수가 5만7469명밖에 안된다. 57만이나 570만이 아니다. 만약 2020년 어떤 신인 감독이 첫 번째 장편 영화를 선보이면서 5만여명 정도의 관객을 모은다면 과연 그 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이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2000년대 한국 영화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개성과 에너지로 활력을 불어넣었던 박찬욱, 김지운 감독이 있었고, 새롭고 낯선 영화 언어에 매혹돼 열정적 언어를 쏟아붓던 평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난해하고 낯선 영화라도 그 도전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했던 관객이 있었다. 극장에서 파는 음식이나 의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낯설고 새로운 시도가 들어와 싹을 틔울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남겨두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젠,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한국 영화산업의 공과 과를 돌아볼 시점이 되었다. 영화와 영화상은 자본과 네트워크가 완성한다는, 영화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게 당연한 진리이자 절대선인 것처럼 통용된다. 이미경 부회장은 말 그대로 이 질문을 무대에 올렸다. 미키 리의 등장과 수상 소감은 봉준호 감독과는 다른 의미로 상징적이다. 


그렇다면 이젠 기왕 던질 질문이니 풀어 볼 차례이다. 그 자본과 네트워크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부터 말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