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아르곤’과 언론 소재 콘텐츠의 유행

2017년을 어느덧 3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미리 올해 콘텐츠 최고의 키워드 하나를 꼽는다면 ‘언론’이 아닐까. 지난 10여년간 보수정권에 의해 자행된 언론 탄압의 한풀이라도 하듯 연초부터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 <아르곤>의 한 장면.

극장가에선 연초 개봉된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시작으로, 현재 <공범자들> <저수지 게임> <김광석> 등 세 저널리즘 다큐멘터리가 동시에 상영 중이다. 방송가에서도 몇 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 한 기자 소재 드라마가 두 편이나 방영됐다. 바로 이달 초 종영된 SBS <조작>과 현재 방영 중인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이다.

 

언론 소재 콘텐츠의 유행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작용한다. 하나는 지난 국정농단 사태로 부쩍 높아진, 숨겨진 진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고, 또 하나는 대안 언론의 성장이다.

전자의 관심은 은폐된 진실을 폭로하고 추적하는 콘텐츠의 스토리텔링에 반영되어 있다. 가령 <공범자들>은 지난 보수정권 아래서 권력자들이 어떻게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입맛에 맞게 길들였는가를 고발하고, <저수지 게임>은 전직 대통령의 숨겨둔 거대 비자금을 추적하며, <김광석>은 1996년 사망한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친다.

 

픽션인 드라마의 경우 더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조작>은 국정농단 사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언론과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숨은 권력자들의 실체를 뒤좇는다. <아르곤>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건물 붕괴 사건을 소재로 참사의 원인과 정경유착 비리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로, 대안 언론의 성장은 제작진이나 등장인물의 특징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해직언론인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대안 언론의 성장 뒤에 정권의 언론 탄압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예컨대 영화 <공범자들>의 감독 겸 대안 언론 ‘뉴스타파’ 앵커 최승호 PD, <김광석>의 감독 겸 대안 언론 ‘고발뉴스’ 기자인 이상호는 모두 MBC 해직언론인 출신이다.

 

<저수지 게임>의 두 주역 김어준, 주진우는 이명박 정부의 시사 프로그램 폐지 및 축소의 틈을 파고들며 대안 매체로 급부상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로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드라마에서도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본격 언론 드라마는 아니지만 올해 초 방영된 SBS <귓속말>은 언론노조 파업 당시 해직된 언론인의 끈질긴 권력형 비리 취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조작>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인터넷 매체 언론인들과 신념을 지키려다 한직으로 밀려난 기자들이 주인공이고, <아르곤>은 해고된 기자들의 결원을 메우려고 채용된 계약직 기자들의 딜레마를 소재로 한다.

 

언론 소재 영화와 드라마는 정치사회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실제 현실에서는 KBS와 MBC 언론노동자들이 잃어버린 공영방송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동시 파업을 벌이고 있다. 현실과 콘텐츠가 이렇게까지 역동적으로 상호교차하는 사례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지금 언론 소재 작품들이 가장 흥미로운 콘텐츠로 떠오른 이유다.

이 가운데 조금 더 눈길이 가는 작품은 <아르곤>이다.

 

이 드라마는 변화한 언론 환경의 현재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언론이 이렇게까지 망가지기 이전의 근원적 역할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극중에서 HBC 방송사의 유일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아르곤’을 이끄는 팀장 김백진(김주혁)이 언론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신념을 고수하는 인물이라면, 계약직 기자 이연화(천우희)는 권력의 검열과 불안한 생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요즘 언론의 현실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고참 팀장과 까마득한 막내 기자로 만난 두 사람은 경력과 나이차를 초월해 기자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주고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아르곤>이 재난보도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백진은 속보에 목매다는 다른 방송사들과 재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차별화한다. 그는 현장에 있던 150여명의 사연에 주목한다.

 

백진이 “하루아침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 하루 종일 뉴스에서 자막으로 휙 지나가는 이름들이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란 걸 알려주자”고 말하는 장면은 언론 드라마로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메시지를 대변한다.

 

비록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서는 지나치게 나이브할지라도, ‘아르곤’팀의 태도는 국내 언론 보도가 갈수록 놓치고 있는 인간적 가치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백진은 신입 기자 시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담당한 경력이 있다. 당시 국내 언론은 구조자에 대해 스포츠 신기록을 중계하듯 다루며 재난보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극중 백진의 보도방침은 그러한 경험 뒤에 나온 고민의 결과다. 이는 동시에 세월호 참사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던 언론 현실을 환기시킨다.

 

당시 언론은 이준석, 유병언 등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추궁에만 집중하며 정부의 재난 대처에 대한 비난 여론을 전환하고, 정권의 말을 받아쓰기 하느라 최악의 오보를 내보냈다. 언론이 인간을 수단으로 여긴다면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언론 보도의 최종 종착지는 결국 인간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르곤>은 언론이 ‘기레기’로 전락한 역대 최악의 언론 참사,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금 인간의 공감에 도달하고자 하는 언론의 이야기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