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학교 2017’과 학교 시리즈 20년사

학원드라마의 전설로 불리는 KBS ‘학교’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다. 현재 월화드라마로 방영 중인 <학교 2017>은 그 일곱 번째 작품이다. 가장 큰 차별점은 기존 시리즈에 비해 현저히 가볍고 유쾌해진 분위기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평범한 고교생 라은호(김세정)가 학교의 권위적 질서를 발칵 뒤집어놓는 의문의 히어로 ‘학생X’와 엮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열여덟 살 청춘들의 유쾌 찬란 생기발랄 성장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시리즈가 방영된 지 올해로 약 20년, 드디어 십대들의 어두운 현실이 확 개선되기라도 한 것일까.

 

<학교 2017> 출연 배우들이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리즈를 되돌아보면 오히려 점점 악화되고 있는 현실만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학교> 시리즈의 등장부터가 이미 비극적 시대의 산물이었다. 1987년 이후 정치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토대 위에서 대중문화의 붐과 함께 찾아온 청소년드라마 전성기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소멸되어가던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KBS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MBC <나>, SBS <성장느낌 18세>, EBS <감성시대> 등 이전의 청소년물이 희망의 성장드라마를 써내려갔다면, <학교>는 외환위기의 그늘이 드리워진 한국 사회 축소판으로서 학교 내부의 모순을 파헤친 현실고발극에 가까웠다. 무한경쟁의 불안이 지배하는 학교는 폭력, 집단따돌림, 체벌, 자살시도, 정신분열증 등으로 얼룩진 공간으로 그려졌다. ‘학교’의 이러한 리얼리즘 화법은 2000년대 들어 네 작품 만에 긴 휴방기를 맞이하게 된다. 더욱 심화된 입시경쟁 시스템의 우울한 현실이 십대들로 하여금 귀여니신드롬으로 대변되는 하이틴로맨스의 판타지로 도피케 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학교’ 시리즈가 다시 부활한 것은 그로부터 십년 뒤였다. <학교1>의 이민홍 PD가 복귀한 <학교 2013>은 판타지가 지배했던 10년 동안 학교에 일어난 변화에 주목했다. 사회 전반으로 확대강화된 무한경쟁 구도가 학교를 어떻게 그 체제의 재생산 기지로 만들어놓았는가를 생생하게 그린 것이다. 드라마는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생과 학부모, 학생과 학생 등 모든 관계가 도구적으로 재편된 현실을 묘사한다. 교장은 교육의 수장이 아닌 고용 CEO 마인드로 학부모와 교사를 대하고, 성적 향상을 위해 초빙된 사교육학원 출신 교사는 학생들을 학원 고객과 다를 바 없이 대하는 세계의 섬뜩함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학교 2013>에 쏟아진 호평은 그 후의 학원드라마 화법이 다시금 현실고발로 돌아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최근의 학원물 안에서 학교는 단지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얼룩진 폭력의 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압축한 지옥도로 재현된다. 가령 <학교 2013>의 후속 시리즈인 <후아유-학교 2015>는 훨씬 어둡고 잔혹해진 학교폭력의 풍경을 그렸다. 폭행, 성추행 등의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이 이어지는 통영이나, 은밀한 심리적 따돌림이 행해지는 서울 강남의 학교는 이미 어디에나 폭력이 편재된 ‘헬조선’의 축소판이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밝은 작품’을 표방하는 <학교 2017>의 경쾌한 화법은 실은 제일 어두운 현실을 가리는 장치와도 같다. 그 안의 세계는 기존의 ‘학교’ 시리즈가 꾸준하게 비판해온 경쟁과 서열사회의 폭력이 극단에 이른 ‘성적계급사회’다. 급식 순서마저 성적에 의해 줄 세워지는 첫 회의 에피소드부터가 노골적이다. 과장된 연출로 비판을 받기도 한 이 장면은 실제로 2014년 한 지역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반영한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서열이 단지 시험성적만이 아니라 경제적 서열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 있다. <학교 2017>의 학생들 가운데 사실상의 서열 1위는 전교 1등인 송대휘(장동윤)가 아니라 이사장 아들인 현태운(김정현)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EBS 다큐프라임 3부작 <공부의 배신>에서 몇 개의 장면을 빌려왔다. 지난해 방영돼 화제를 모은 <공부의 배신>은 실은 부모의 소득으로 얻은 정보력에 의해 좌우되는 입시 전형 현실을 폭로하며 공고화된 서열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기울어진 운동장 안에서 노력밖에는 방법이 없어서 물집 잡힌 손가락과 손목의 통증을 고무 밴드와 손목지지대로 달래며 공부해가는 한 입시생의 모습은 <학교 2017>의 가난한 1등 송대휘의 피로한 얼굴에 옮겨져 있다.

 

그러나 <학교 2017>은 이러한 현실의 폭력을 단순히 전시하는 데에 그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학교의 차별을 ‘돈 없고 공부 못하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서열사회의 질서가 이미 내면화된 풍경을 드러낸다. 은호와 사랑(박세원)이 자꾸만 망상에 빠져드는 것도 서열사회의 맨 밑바닥에 위치한 그들의 무력한 현실을 증명한다. 이런 점에서 <학교 2017>의 자매 프로그램은 사실 Mnet에서 방영 중인 극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인지도 모른다. 출연자들을 A등급에서 F등급으로 구분하고 피라미드 모양 세트로 그 서열을 적나라하게 전시해 비판받았던 <프로듀스101>에서 한발 더 나간 <아이돌학교>는 실시간 순위 공개를 통해 출연자들의 공포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학교 2017>에서 목격하는 것은 바로 그 무한서바이벌의 ‘최종 막장형’이 불러온 황폐한 판타지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