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세월호 참사 이후의 범죄수사극

‘살인은 시대를 반영하고 수사는 시대를 해부한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 <실종느와르M>의 이승영 PD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한 이 문장은 한국형 범죄수사극의 진화라 불리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바로 ‘동시대성’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드라마 열풍과 함께 시작된 국내 장르물 유행이 ‘미드’ 흉내내기에 그쳤다면, 2010년대부터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접목한 웰메이드 수사물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비로소 한국형 장르드라마 수작 계보가 만들어진다. 그 신호탄 같은 작품이 2011년 방영된 김은희 작가의 메디컬수사극 <싸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부검 조작사건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우리 시대의 모순을 해부하는 예리한 비판의식으로 한국형 범죄수사극의 모범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2012년 방영된 이승영 PD의 <특수사건 전담반 TEN>은 범인 추적 못지않게 희생자의 상처에 집중하며 갈수록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시대의 그늘을 포착한 수작이었다. 같은 해 방영된 박경수 작가의 범죄스릴러 <추적자>는 정치, 자본, 언론이 거대한 커넥션을 구축해 한 소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은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지배권력의 어두운 속성을 고발했다.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줄거리의 드라마 <비밀의 숲>의 포스터.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공권력의 폭력이 일그러뜨린 한 가족의 비극을 그린 김지우 작가의 범죄스릴러 <상어>(2013),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김은희 작가의 정치범죄스릴러 <쓰리데이즈>(2014)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으로까지 문제의식을 확장한 작품들도 나타났다.

 

꾸준히 진화해오던 한국형 범죄수사물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변화된 주제의식을 선보이게 된다. 동시대성에 민감한 장르로서 필연적으로 참사의 후유증이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2016년작 <시그널>은 세월호 참사처럼 진실이 채 밝혀지지 않은 미제사건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이, 연인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도 없는 지옥’을 그렸다. 아이의 의문의 죽음 이후 매일같이 경찰서 앞을 지켜온 유족의 애타는 절규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명백하게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범인의 단죄 목적보다 억울한 희생자와 피해자를 위한 진실 찾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세월호 이후 범죄수사극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올해 초 방영된 <보이스>도 여기에 속한다. 112 신고센터 대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독특하게 피해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수사극이다. 남다른 청력을 지닌 신고센터장 강권주(이하나)와 피해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긴 음성 기록들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약자일수록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 현실의 부조리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특징은 <터널>에서도 선명하다. 30년 전의 장기미제사건을 추적하는 이 작품은 범인을 잡는 순간 이야기가 종결되는 수사극과 달리, 유가족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월호 이후의 범죄수사극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악의 속성이다. 기존 수사물들은 시대의 질병을 그대로 반영한 괴물에 가까운 악역들을 범인으로 내세우곤 했다. 제일 흔하게 등장하는 재벌, 정치인 소시오패스는 약자를 잔혹하게 짓밟는 부패한 권력의 속성에 대한 은유였다. 하지만 최근 범죄수사극에서 악은 평범한 일상성을 띤다. 예컨대 <터널>의 진범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소름 끼쳤다. “살인범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살인 또한 하루아침에 이유 없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범죄심리학 교수 신재이(이유영)의 말은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누구라도 전염될 수 있는 우리 시대 악의 속성에 대해 경고한다. 박경수 작가의 최근작 <귓속말> 또한 ‘아무도 모를 한 번의 비윤리적 타협’이 거대한 범죄로 발전하는 악의 연쇄를 통해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비밀의 숲>도 마찬가지다.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 드라마는 악의 모호성을 이야기한다. 흔히 전형적인 ‘악의 최종 보스’처럼 보이는 재벌그룹 회장(이경영), 부패 검사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모든 인물을 예외 없이 범죄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는다. 문제적 개인이 아니라 검찰 조직 시스템 자체의 부패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우린 검사야. 뇌물을 받기도 하고 접대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 전관예우도 바라고. 죽도록 책만 파다 갑자기 권력을 얻고 물불 못 가리기도 하지만 우린 검사야. 법을 수호하기 위해 여기 왔어.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나에겐 믿음이 있어. 이 건물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믿음. 수호자와 범죄자. 법복과 수인복. 우린 그 어떤 경우에도 단죄 내려야 할 부류와는 다르다는 믿음.” 스폰서 검사 이창준(유재명)이 당당하게 내뱉는 대사는 부패를 인지조차 못할 정도로 뿌리 깊은 적폐를 나타낸다.

 

이 같은 악의 묘사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적 속성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유족들을 억압한 것은 분명 부패한 권력이었지만, 유족들의 절규를 지겹다고 외면하며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세월호 인양을 반대한 목소리가 평범한 시민들 가운데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의 범죄수사극은 바로 이러한 시대의 비극을 해부하며 상처 치유를 시도하는 동시에 마비된 윤리의식에도 경종을 울린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