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육개장

이즈음이면 모락모락 김 피어오르는 국솥부터 머릿속에 삼삼하다. 콩나물국·북엇국·두부찌개·김치찌개·동태찌개·설렁탕 등이 절로 연상되는 순간, 내가 한국인임을 실감한다. 육개장이 빠질까. 거듭 데워도 맛이 덜 빠지는 미덕이 있는 이 음식에 대한 기록은 일찍이 시작됐다.

 

유득공(1748~1807)의 <경도잡지>와 홍석모(1781~1857)의 <동국세시기>에 보이는 ‘구장(狗醬)’, 곧 개장국이 육개장의 원형이다. 당시에는 개고기 장국에 파와 후추 또는 초피를 써서 맛을 냈다. 당시에는 찜과 국의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홍석모에 따르면 구장은 시장에서도 많이 팔았다.

 

서민에게는 개고기가 만만했을 테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고기가 더 좋았을 테다. 구장이 엎어지면 소고기 육개장이요, 닭을 쓰면 닭개장이다. 어느 쪽이나 파 그리고 맵싸한 향신료가 결합한다.

 

기록은 19세기 말로 이어진다. <규곤요람>(연세대본)의 육개장은 장물에 고기를 익혀 파·참기름·후추의 풍미를 입히는 방식이다. 이를 “손님 밥상에도 떠 놓고 또 점심에도 밥을 잘 지어 국을 말아 먹는다”. 거듭 데워도 맛이 덜 빠지는 미덕은 예로부터 오롯했다. <시의전서> 속 육개장의 재료는 정육·흘떼기·허파·창자·양에다 전복·해삼까지 이른다. 파·갖은양념·기름장으로 풍미를 내고 완자·지단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또는 ‘건육개장’이라는 찜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건육개장은 “겨자를 쓰면 술안주로 좋다”. 이윽고 ‘계개장’이 나온다. ‘계개장’에서 한 글자만 비틀면 ‘닭개장’이다. 어린 닭을 백숙해 건져 “뼈를 다 추리고 뜯어 육개장 하듯” 하란다. 이상은 서울판이다.

 

20세기 초 낙동강 유역의 신품종 대파 농사와 만난 육개장은 영남판으로 재구성되었다. 1929년 12월 발행된 ‘별건곤’ 제24호에 따르면 육개장의 ‘본토’는 ‘대구’이고 그 관능이 이렇다. “혓바닥이 델 만큼 뜨겁고 김이 무럭무럭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을 대하고 앉으면 우선 침이 꿀꺽 넘어가고 아무리 엄동설한에 언 얼굴이라도 저절로 풀리고 온몸이 녹아서 근질근질해진다.

어쨌든 ‘대구육개장’은 조선 사람의 특수한 구미를 맞추는 고춧가루와 개장을 본뜬 데 그 본래의 특색이 있다. 까딱 잘못 먹었다간 입술이 부풀어서 애인하고 키스도 못하고 애매한 눈물까지 흘리리라.”

복날 구장이 시나브로 육개장으로 건너가더니, 다양한 채소와 고춧가루의 풍미가 어울린 서울식이 나오고, 같은 바탕이지만 대파의 단맛과 고기의 구수함을 보다 강조한 영남식도 나왔다. 이제 국물의 농도와 점도, 얼큰함에 방점 찍느냐 개운함에 방점 찍느냐, 내 마음에 드는 부재료, 한 대접의 치레 등을 놓고도 육개장의 다양한 연출을 새로이 떠올릴 만하다.

 

이 흐뭇한 한 사발에 다양한 시도가 뒤따랐으면 한다. 조리의 실제에서나 그 관능의 표현에서나! 아무튼 21세기다. ‘입맞춤’의 언저리를 압도하는 맛 표현의 탄생 또한 기다린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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