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짬뽕

한국어 초마면(炒碼麵), 일본어 챤폰(?烹), 중국어 자후이몐(雜?麵).

 

짬뽕을 동아시아 사람에게 써 보이자면 어떤 한자와 어휘가 좋을까? 한·중·일 세 나라 말과 한문에 능한 공부꾼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꽁꽁 묶어라’를 ‘필(必)자 모양으로 결박하라’로 받아썼다는 글방 농담이 새삼스러웠다. 그래서? 중문판 안내문은 알파벳 ‘Jjamppong’으로 미봉하고 말았다. 2020년 9월19일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한국화교화인연구회가 주최한 ‘군산화교 학술 웨비나-학교에서 짬뽕까지 군산화교 다시 읽기’의 막후가 이랬다.

 

짬뽕 한마디가 쉽지 않구나! 절로 탄식이 터졌다. 짬뽕을 둘러싼 말과 말 사이에서 벌어진 머뭇거림과 유보는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당한 유보를 못 견디는 시대를 건너는 중이다. 예컨대 포털사이트와 먹방에서 대개 세 줄로 요약되는 짬뽕의 역사는 이런 식이다. “1899년 나가사키의 중식당 사해루(四海樓)에서 흰 국물의 짬뽕이 탄생했고, 그것이 한국으로 와 붉고 얼큰한 짬뽕이 되었고, 그 원래 이름은 ‘초마면’이다.”

 

여기에는 빈구석이 많다. 먼저 사해루를 세운 진평순(陳平順·1873~1939)은 중국 복건 출신이다. 그가 시작했다는 짬뽕에는 중국 남부의 면요리 기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초마면은 사해루의 연대기에 없다. 나가사키의 짬뽕이란, 고향과는 전혀 다른 환경과 식료품에 적응한 복건 사람이 우발적으로 창안한 음식일 테다. 그게 한반도로 건너왔다니, 기술은 사람이 가지고 오는 법이다. ‘그 사람’이 확인되지 않는다. 소바와 우동은 일본 어디나 있지만 짬뽕은 나가사키에 한한다.

 

나가사키의 누가, 또 무슨 조리법이 제물포 이남 화교 음식점에 실제로 와닿았을까? 19세기 이래 한반도 중식에서는 산동 사람과 산동풍이 절대로 우세했다. 여기에 중국 남부 사람과 그 기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거의 없다. 연세가 지긋한 화교 요리사 가운데 나가사키, 규슈의 복건풍 중식과 한국 산동풍 중식 사이의 접점을 떠올리는 분은 없다. 그저 1970년대까지 초마면과 짬뽕 두 말이 나란히 사용됐다는 기억을 말할 뿐이다. 요컨대 나가사키에서는 나가사키짬뽕이, 한국에서는 한국짬뽕이 저마다 나고 자랐다고 하는 편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설명일 테다.

 

세 줄 요약형 말끔한 설명은 무리함에 빠지곤 한다. 그러고는 음식을 객담과 낭설에 가둔다. 사람과 조리 기술의 실제에 바탕한 탐구를 방해하는 나쁜 효과를 낳는다. 복건, 일본열도, 대한해협, 목포에서 제물포 사이가 거론되는, 거대해서 낭만적인 이야기가 멋있어 보여서일까. 잗다란 지식 자랑일수록 형식적인 완결성이 중요해서일까.

 

이해와 설명에서 빈구석을 보았다면 잠깐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음식에 대한 이해와 설명에서, 정당한 유보가 보다 명예로웠으면 한다. 2021년을 바라보며 음식 글을 쓰는 자의 진심이다. 멈춤과 유보를 대망한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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