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국제적 식당가 이태원

이태원을 흔히 서울 속 인종 전시장이라고 한다. 인종이 ‘전시’됐다는 표현이 무언가 파시즘의 냄새를 풍겨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여하간 인종이 다양하기는 하다. 내가 일하는 식당 앞에는 국적과 인종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근처에 대사관 골목이 있기 때문에 영사 업무랄까, 드나드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큰 호텔도 있어서 관광객도 많다. 가만히 보면, 같은 중국어를 쓰는 사람도 국적이나 지역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차림새와 표정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홍콩, 대만, 본토의 중국인에다가 미주지역의 화교들도 이태원에 놀러온다. 이슬람권의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다. 머리에 쓰는 수건도 다르고, 표정도 다채롭다. 흑인들도 북아프리카 계열의 덩치가 작고 귀여운 친구들도 있고, 서부 해안이나 나이지리아에서 온 근육질의 사내들과 육체파 아가씨들도 있다는 걸 여기서 알았다. 아, 물론 좀 건들거리며 걷는 걸음새의 흑인들은 대개 미군이라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다는 것도 말해야겠다.

 

이태원 (경향DB)



하여튼 이태원은 인종으로 펄펄 끓는 활력이 있다. 이슬람권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서울에 많이 산다는 것도 여기서 알았다. 숫자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동사무소에서 붙인 쓰레기 분리수거 안내문이 아랍어로 병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자의 경직성 없이, 그래픽을 보는 것 같은 예쁜 글씨들 말이다. 무엇보다 이태원은 싸고 맛있는 현지 음식이 널렸다. 한때는 미군들이나 좋아하는 음식이 주로 팔렸지만, 이젠 제법 현지의 맛과 느낌을 그대로 재현한다.


여기서는 누가 더 정통성이 있느냐 뻐기지도 않는다. 그저 원래 그랬던 것처럼,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판다. 이슬람 사원 앞에 가면 아랍에서 보던 대추야자와 꿀로 만든 과자(일본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요네하라 마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터키식 과자 ‘할바’가 바로 이 스타일이다)가 떡하니 팔리고 있다. 아랍 과자점이다. 아랍의 과자는 현대 유럽 과자문화의 원형이다. 그만큼 위엄이 있고 맛있다. 터키식 케밥도 맛있어서 어떤 이는 터키나 독일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맛있다고 한다. 할랄 푸드라고 하는, 이슬람식 도축을 거친 고기를 쓰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내 식당 바로 앞에는 멕시코 음식점이 있는데, 토르티야나 부리토 같은 멕시코 음식이 미국식의 허접스러운 세례 없이 오리지널하게 만들어져 나온다. 당연히 멕시코 요리사가 있다. 한번은 그쪽 식대로 고수를 잔뜩 넣은 음식을 먹고 엄지를 척 내세운 적도 있다. 그가 찡긋 윙크를 해서, ‘참 귀여운 녀석이군’ 하기도 했고.


이태원 (경향DB)



요즘은 영국과 미국식 에일 맥주를 만들어 파는 집들이 ‘대세’다. 낮부터 맥주 한 잔을 들고 서서 먹는, 뭐랄까 영국의 옥스퍼드나 미국의 대학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주말이면 아가씨들이 어디선가 엄청나게 몰려와서 맥주를 마신다. 마치 아마조네스 맥주 왕국이 만들어진달까, 그걸 구경(?)하러 젊은 남자들도 몰려온다. ‘아, 정말 이태원은 신기한 동네구나’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휴가철, 멀리 떠나지 못했다면 이태원을 어슬렁거리면서 걷고 구경해 보시기 바란다. 음식이야, 더할 나위 없이 개성있고 맛있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치의 귀환’을 기다리며  (0) 2013.08.23
차별의 음식  (0) 2013.08.09
강적은 ‘임대차보호법’  (0) 2013.07.26
라면에 대한 이중잣대  (2) 2013.07.19
조선간장  (0) 201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