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라면에 대한 이중잣대

라면은 원래 ‘늘여서(拉)’ 뽑는 면이라는 뜻이다. 납(拉)의 중국어 발음이 ‘라’이다. 원래는 난징, 란저우 등의 중국 내륙의 면이다. 수타면이라고 하여, 탕탕 두들기며 뽑는 중국집 면이 바로 라면의 원형이다. 라면은 일제의 개항기와 중국 침략기를 거쳐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이제 우동보다 라면이 더 잘 팔린다. 우동의 본고장에서도 라면 가게가 성업한다. 일본은 중국의 라면에 일본식의 색채를 입혀 독창적인 라면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여전히 그 뿌리는 중국식이라는 걸 감추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파는 ‘주카소바’라는 광고는 바로 라면이다. 주카(中華)식 국수라는 뜻이다.


라면 (출처 : 임운석)



그런 일본이 먹기에 간편한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개발했다. 근원은 중국에 있지만 인스턴트 라면은 독자적인 하나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일본음식인 셈이다. 그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에 전래된 지 50년이 됐다. 이제는 그 인스턴트 라면이 하나의 한식으로 정착됐다. 원래는 중국 것이지만 일본에서 크게 히트하고,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묘한 ‘삼국지’를 완성한 것이 바로 인스턴트 라면이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소비량도 최근의 통계에서 보면 70개 언저리다.



(경향DB)


세계 1등이다. 상상 외로 많이 먹는다. 라면은 남녀노소, 빈부와 계급의 차이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갑부들도 집에서 라면을 끓일 것이다. 호텔에서 풀코스 요리를 먹고 집에서 찾아 먹는 게 라면이다. 시원하고 매운 국물, 후루룩 면발을 먹어야 느끼한 걸 마무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라면은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최초로 시도하는 요리가 대개 라면이다. 아이들은 처음 라면을 끓이면서 불과 물, 음식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주홍색의 전통적인 ㅅ라면이냐, 노란색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볏단이 그려져 있는 ㄴ라면이냐 고르던 고민은 내 인생 최초의 갈등이었다. 통학 버스에서 김칫국이 흐르지 않게 막아주던 것도 라면봉지였다. 몇 개나 삶아 먹을 수 있나 포식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도 라면이었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은 것도 라면 그릇 앞에서였다. 이십년도 넘은 옛날, 노동운동으로 수배된 선배의 비밀 자취방을 찾았을 때 그가 찬장을 뒤져 대접한 건 반 그릇의 라면이었다. 수배자의 피곤하고도 분노 어린 상황을 그처럼 적절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준 소품은 다시없을 것이다. 라면으로 우리는 울었고, 라면으로 원초적인 칼로리를 얻으며 부대끼고 살았다. 라면은 그저 간편한 식품 이전에 하나의 혁명이었고, 우리 삶이라는 드라마에 꼭 필요한 조역이었다. 그런 라면에 대해 우리는 사랑과 불신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다. 좋아하면서도 심리적 불안을 표현하곤 한다. 라면은 몇 가지 혐의를 받는다. 짜다, 첨가물이 많다, 몸에 나쁘다…현대의 가공식품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혐의를 거의 혼자서 뒤집어쓴다. 대개는 기우다. 짜기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가 한식의 대표주자로 생각하는 찌개류가 더 심각하기 일쑤다. 밀가루야 어디 라면뿐인가. 단돈 육칠백원 언저리에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이 식품의 미덕을 무시하는 건, 그다지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인스턴트 라면으로 퍽퍽한 세상을 버텨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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