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먹거리, 종의 다양성

MBC 5부작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문화방송의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지금도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광포한 소비사회의 저편에서 나름대로 삶을 꾸리고 있는 여러 부족들이 기억난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사람들은 아마도 “지구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각기 생김새며 피부 색깔이며 언어가 다른 인종과 민족이 지구에 산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그럭저럭 이 별에서 어울리고 있다. 이걸 어떤 이는 공존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오직 백인만 사는 별이 아니듯, 우리 식탁에 오르는 종자도 제각기 다 소용이 있다. 서양의 밀이 대세이지만 앉은뱅이밀이라는 토종이 그 이름이 풍기듯 끈질기게 씨를 품고 있다. 이 밀로 빵을 만들기도 한다. 입에 쩍쩍 붙는 맛은 아닐지 몰라도, 제법 구수하다. 우리 닭의 원형을 사실상 알아보기 힘든 형편인데 논산군 연산에서는 오계(오골계)를 기른다. 성질이 얼마나 사나운지 마치 우리 옛 기질을 보는 것 같다. 살은 차지고 달아서 여름 보양식으로 최고다. 다수확의 개량된 벼들 사이에서 우리 고대미도 아직 그 거친 숨을 쉬고 있다. 항산화 영양물질인 폴리페놀이 일반 품종의 수백 배니 하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어, 쌀맛이 이럴 수도 있어?’ 하는 경이를 준다.



오골계 (경향DB)


불행하게도 이런 몇몇 종을 제외하면, 우리 토종이랄 것이 상당히 적다. 시장은 오직 효율과 가격 중심으로만 움직인다. 토종 말고도 종의 다양성은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다. 언젠가 시장에서 감자의 품종을 여쭈어봤더니 판매상은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알고보니 품종이 아니라, 그저 크기에 따른 분류일 뿐이었다. 한국에는 토마토 품종이 큰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두 종만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국제 광고대회에 나온 어떤 작품을 보고 나는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다양성’이라는 제목 아래, 그 제목을 상징하는 그래픽으로 사과들을 쭉 나열해 놓은 것이었다. 수많은 사과의 다종다양한 색깔과 모양이 ‘다양성’을 상징하는 멋진 광고였다. 그런데 한국인은 이런 광고의 의미를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사과라고는 거의 똑같은 품종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국광이나 자그마한 능금, 홍옥과 스타킹…, 토종이든 외래종이든 그 다양한 사과는 다 어디 갔는가. 빨갛고 단단해서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으면 아름답게 반짝이던 홍옥을 만나려면 백화점을 다 뒤져야 한다. 사람들에게 사과 품종을 물었더니 ‘꿀사과’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답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해진 슬로푸드는 국제본부가 있고 한국에도 사무소와 활동가들이 건재한다. 이 국제 슬로푸드본부는 ‘맛의 방주’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멸종해가는 품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를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최후의 방주에 실을 우리만의 품종이 있는가 묻게 된다. 



올가을에 한국에서 이런 맛의 방주를 띄우는 신명난 잔치가 열린다.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다. 이 지구에 다양한 사람이 살듯, 우리 먹거리의 종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이 대회에서 그 가치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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