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조선간장

우리 고어(古語) 연구자들은 지역 사투리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곤 한다. 일부러 학생들이 시골 노인을 모시고 워크숍을 하기도 한다. 사투리는 표준어가 내다버린 우리말의 오랜 유전자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 고향에서는 벌써라는 뜻으로 ‘하마’, 늘이라는 뜻으로는 ‘맹’을 쓴다. 이런 사투리를 고문을 다루던 국어시간에 가사문학과 시조에서 발견하곤 나도 모르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경남지역에서 쓰는 여러 말에 ‘ㅂ’이 부드럽게 순화되는 언어 관습-추워가 추버, 더워가 더버가 되는 식의-은 곧 고어와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요리도 그런 경우를 보게 된다. 부모님 고향에선 일상 음식에서 맛을 내기 위해 왜간장이나 현대적인 조미료를 섞어 쓰면서도 제사나 상(喪)에 쓸 때는 딱 하나만 부엌에서 꺼낸다. 바로 조선간장이다. 어려서는 왜 제사 음식은 보통 음식과 맛이 다를까 의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그 이유를 알게 됐던 것이다.



“제사에 쓰는 건 조선간장으로 해야 맞제.”



어머니의 말씀은 그게 무슨 따질 일이라도 되느냐는 듯 심드렁하다. 옛사람인 고인에게 대접하는 음식은 그들이 드셨던 간과 양념을 써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조선간장 같은 전통의 양념은 음식의 맛을 전혀 다른 경계로 끌어간다. 오래전 맛보고 잊어버렸던 맛이 하나둘 떠오르는 것이다. 그 간장 하나가 우리 미각사의 희미한 내림을 근근이 잇고 있다고 할까. 나는 조선간장 맛을 보면서 내가 살지 않았던 세대의 음식맛을 추측해내게 된다. 그 간장이 없었다면 옛 음식의 맛은 완전히 화석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경향DB)



조선간장은 사실상 현대인의 양념통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보다 더 감칠맛 내는 재료가 많고, 이미 시중에서 널리 쓰는 다양한 조미료에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조선간장은 제사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조선간장은 모르긴 몰라도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 세대의 퇴장과 함께 민속박물관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된장을 담가도 간장은 잘 안 내린다. 짜고 독특한 발효향이 있어서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없는 데다가 만들 공간도, 의지도 없는 까닭이다. 그나마 제사가 있어서 조선간장 맛을 봐왔다.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면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육개장을 끓여내는 게 고향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대가 거의 끊어졌다. 시내의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쓰게 되니 마을에서 협동으로 육개장을 끓이고, 가장 장을 잘 담그는 집의 간장을 내어 간을 맞출 일이 없어져버린 탓이다. 간장은 고추장과 달리 우리 음식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었으며, 역사도 아주 오래됐다. 그렇게 오래 버텨온 조선간장은 일제강점기와 고난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사어(死語)처럼 문서로나 남을 위기에 처해 있다. 세월과 함께 말과 입성, 가치가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조선간장이 사라지는 건 음식사에서 대단히 안타까운 사건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조미료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한 국자로 수백명 분의 육개장 맛을 결정지어 버리는 마성이 있는 조미료가 어디 또 그리 쉬이 있겠는가.



육개장 (경향DB)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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