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나는 요리사’

언제부터인가 날더러 ‘셰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의 음식 문화가 들어오면서 셰프가 요리사 내지는 주방장이라는 오랜 호칭을 밀어내버린 형국이다. 내가 쓰고 있는 한글프로그램은 셰프라는 글자를 치면 붉은색으로 경고를 한다. 아직 우리말에 섞이지 않은 외래종이란 뜻이다. 여기서 우리말을 쓰자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셰프라는 말이 소매 긴 양복처럼 우리에게 너무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셰프(chef)란 원래 치프(chief)란 뜻의 불어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부서의 장을 셰프라고 흔히 부른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프랑스요리를 받아들이면서 주방장 내지는 요리사를 셰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배경을 두고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마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상륙한 영국인과 캥거루의 일화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인들이 캥거루를 가리켜 원주민에게 묻자 ‘모른다’는 뜻으로 캥거루라고 대답한 것이 굳어졌다는 설이다. 즉 영국인들이 프랑스 식당에서 주방장을 가리켜 묻자 셰프(즉, 책임자)라고 한 것이 요리사를 통칭하는 말로 오해해 굳어졌다는 그럴듯한 설명인 것이다.



어쨌든 셰프는 영어권에서 주방장을 뜻하기도 하고, 요리사 일반을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를 대체할 말이 별로 없는데다가 뭔가 세련된 의미인 듯하여, 부르는 이나 듣는 요리사나 그러마고 인정한 모양새다. 주방장은 한때 권위와 실력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모든 요리사를 그렇게 부르면서 가치하락(?)이 돼 쓰임새가 줄어든 판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지인은 ‘숙수’라고 부르자는 주장을 한다. 궁중과 고급요릿집의 남자 요리사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전통 있는 호칭인 셈인데, 아직은 생경하다. 우리가 이모 내지는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여성 요리사들을 흔히 업장에서 찬모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호칭은 역사적으로 궁중에 소속된 노비계급의 부엌 노동자를 의미했으니, 수용자가 그리 좋아할 말은 아니다. 그래서 차림사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나왔다. 글쎄? 좀 인위적인 작명이 아닌가 싶다. 이런 혼란 속에서 여전히 요리사, 조리사, 조리장, 주방장, 요리사, 셰프, 불판, 칼판 등 수많은 용어가 혼용된다.



MBC 드라마‘파스타’에 출연하는 공효진, 이선균


어느 지인은 스파게티 면을 다루는 나를 면장(麵長)이라고 불렀다. 이 역시 5급공무원인 전국의 면장님들이 불쾌해 할 호칭 같기도 하다. 당대의 직업군 중에서 이처럼 호칭이 복잡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나는 그럼 어느 쪽이냐면 요리사라고 불리는 것이 좋다. 우리가 만들어낸 말은 아니지만 이 직업인이 하는 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란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이라는 뜻과 함께 어떤 재료를 다루어서 맛을 낸다는 뜻을 같이 갖고 있다. 요리사라는 호칭이 가장 부합되는 내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나를 요리사라고 불러주면 나는 내가 맛을 내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셰프라고 호칭하면 뭐랄까, 괴팍해지고 건방져진달까. 다른 ‘셰프님’들께는 참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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