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여름, 냉면의 추억

예전에는 이맘때면 거리에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냉면’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그냥 페인트나 먹으로 ‘냉면 개시’라고 쓴 부적 같은 종이를 붙인 것도 있었다. 붉은 깃발이 나른하게 햇볕에 졸고, 흙길은 바싹 말라서 먼지를 풀풀 일으켰다.


 

삼베 적삼을 입은 동네 아저씨들은 부채질을 하면서 진땀을 식혔다. 흔한 서울 변두리의 여름 풍경이었다. 요즘처럼 시내 냉면집 순례를 가는 일도 쉽지 않았으니, 그저 동네의 밥집에서 냉면을 먹었다. 육수를 어떻게 냈는지 몰라도 새콤한 맛으로 먹었던 것 같다. 토마토가 한 쪽 올라 있고, 오이채와 얼음 덩어리를 곁들여 주는 게 흔한 동네 냉면의 스타일이었다. 이런 냉면은 대개 미리 만들어진 면을 삶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공급되는 냉면가락이 서로 붙어 있어서 수북하게 탁자에 쌓아 놓고 일일이 떼어내야 했다. 이런 ‘임시 계절 냉면’에 대항하기 위해 직접 면을 뽑는 집들은 ‘기계냉면’이라고 강조하면서 팔았다. 어린 나는 왜 손냉면이 아니라 기계냉면인 것을 자랑할까,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왜 칼국수는 손칼국수인데 냉면은 기계냉면일까 하는. 



혹시라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면, 냉면은 메밀을 많이 넣어야 제격이고, 메밀의 특성상 단단하게 반죽해서 기계로 내려야 면의 형태가 제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예전 평안도 지방에서 겨울에 메밀면을 내려 먹을 때 국수 틀을 썼던 것과 같은 이치다. 강원도에서 막국수를 내릴 때 틀을 이용했던 것도 물론 마찬가지다.



기계냉면집에서는 유압식의 커다란 기계장치를 달았고, 면이 쑥쑥 빠져나와 그대로 솥으로 들어가게 해서 푹푹 삶았다. 기계를 다루는 요리사의 팔뚝에서 떨어지는 땀, 재빨리 삶은 면을 사리 지어 그릇에 담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간혹 어머니는 서울 오장동으로 나를 데려가셨는데, 함경도 사람이 많던 중부시장의 상인들이 많이 몰려왔다. 그 덕에 독특한 액센트의 함경도 사투리를 들으며 이국적인(?) 냉면을 먹었다. 나는 면발을 빠는 것보다 엉뚱한 장면에 매혹되곤 했는데, 좁은 주방 창으로 연신 주문을 넣는 홀 지배인 아저씨의 낭랑한 음성이었다. 지금도 그 아저씨들은 건재해서, 마이크로 연신 주문을 넣는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매운 냉면을 먹자니, 순식간에 30년의 세월이 거꾸로 흘러가버린다. 



어머니는 냉면이 나오기 전에 결의를 다졌는데, ‘자르지 마세요!’를 연습하는 것이었다. 냉면을 가져다주는 소년이나 아가씨들은 먼저 가위를 댄 후에야 ‘잘라 드릴까요’ 하고 묻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가위를 들고 그렇게 묻는데, 그때보다 동작이 더 빨라진 것 같다. 모쪼록 함흥냉면을 드시려면 우리 어머니처럼 연습을 하고 가셔야 할 것 같다. 홍어회를 얹은 매운 냉면을 땀 흘리며 먹는 사람들 사이로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던 그 어느 여름날의 오후. 오늘 무릎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그 집을 가야겠다. 그 시절의 오장동, 충무로는 여전히 느릿하고 변화가 없다는 게 다행스러운 듯하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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