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대중식당 점령한 재벌의 양념

미국 요리가 세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에 비판적이며 자존심 도도한 유럽에서도 미국식 스테이크점이나 햄버거 가게가 성업한다. 신문에서는 연일 미국을 비판하고 각을 세우지만 현실로 내려가면 상황이 다르다. 청바지에 미국 팝을 즐기고 ‘빅맥’을 먹는 건 비판의 여지조차 없는 자연스러운 대중문화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카페테리아와 피체리아(피자집)에서 바게트와 피자에 콜라를 곁들이는 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미국식 식품산업이 식당의 선반까지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바쁜 가정의 찬장에 다국적기업의 제품들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식당에서는 손수 만든 재료를 많이 쓴다. 지역에서 나온 올리브유와 소박한 토마토소스, 수공업으로 만든 치즈로 요리를 한다. 


 


필자가 이탈리아에서 일할 때 식당 주방에서 쓰는 대기업 제품이라고는 수세미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만들어 쓰고 동네에서 사다 썼다. 반면 미국은 알다시피 거대 기업의 식품이 가정이든 식당이든 대부분 장악했다. 고급 식당이라면 모를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의 제품이 가정 식탁의 접시에 올라가며, 식당의 주요 재료가 된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 등장해 화제가 된 바로 그 조개 수프와 통조림 토마토 수프 상징을 떠올리면 얼추 들어맞는다. 



반면 우리의 대중음식은 오랫동안 재래시장과 그 유통 시스템으로 굴러갔다. 무엇이든 시장에서 사고, 된장과 고추장 같은 것들은 (시장에서 산 재료로) 담그거나 시골에서 받아 썼다. 식당들은 만들어 팔 음식의 재료를 동네 시장에서 구하고, 수수하고 작은 회사의 제품들로 요리했다. 기억하시는가. 기름집의 고소한 냄새, 두붓가게의 갓 나온 두부들, 어묵집에서 땀흘려 튀기던 다양한 맛의 어묵….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묵도 두부도 심지어 참기름 한 병조차 재벌이 만드는 것을 쓴다. 시장의 붕괴로 좋은 재료를 대주던 지역의 가내 생산자들이 사라진 것은 오래고, 원래는 소박한 중소기업이었던 식품회사도 붕괴하고 있다. 그중 다수가 재벌 소유가 되면서 재료 공급의 재벌 편중이 더 심해졌다. 재벌은 그렇게 생산한 제품을 역시 재벌 소유의 유통망에서 판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밀면서 우리는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안락은 무언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잊게 만든다.



우습게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중식당들에서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진다. 재벌이 만든 각종 양념과 재료의 다수는 값싼 대중식당으로 풀린다. 식당은 밥을 팔아서 이익을 내고 그중 일부를 재료비로 지급하게 되는데, 점점 전통적인 유통망과 재료상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대중식당일수록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그런 경향이 짙어진다. 가난한 이들이 일으킨 이익일수록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외면하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뜨거운 밥 한 술에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그 밥상이 상징하는 막막한 미래를 읽는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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