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농축된 석유를 먹는 사람들

덴마크에 노마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다. 권위 있는 레스토랑 비평지에서 매년 수위권을 차지한다. 맛도 맛이지만 이 식당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가 있다. 있는 그대로, 될 수 있으면 손을 덜 거친 수수한 음식을 낸다. 날 당근과 순무가 그대로 식탁에 오르고, 별거 아닌 것 같은 견과류 몇 쪽이 주요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몇 달 치 예약 리스트는 꽉 차 있고 전 세계 언론의 인터뷰가 밀려든다. 최근 식중독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그 명성은 여전하다. 남다른 노력으로 훌륭한 맛을 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들의 철학은 좀 남다르다. 이른바 자연주의다.



덴마크는 사실 미식이라거나 ‘오트 퀴진’(고급스럽고 화려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추운 지역이고, 산물이 다양하지 않아 맛의 변별점이 복합적이지 않다. 투박한 빵과 유제품, 생선을 주로 먹는다. 그런 땅에서 노마의 성공은 대단한 별종이었다. 그들은 재료부터 엄선한다. 그들 땅에서 나는 것만을 낸다. 서양식당에서 올리브유는 이미 필수품이지만, 덴마크에는 올리브나무가 없다는 이유로 쓰지 않는다. 대신 다른 나무열매의 기름이나 견과류 유지, 버터를 쓴다. 더 좋은 게 있을지라도 덴마크 땅에서 나는 걸 쓸 뿐이다. 




생선도 칠레농어나 참다랑어 같은 최상급 어종 대신 자기 앞바다에서 나는 대구와 청어를 쓴다. 채소도 요리사의 손이 닿은, 식당 뒤에 있는 텃밭에서 기른다. 무엇이든 맛있고 귀한 것은 상에 올리겠다는 다른 고급 식당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청담동을 비롯한 고급식당가는 수입재료의 대격전지다. 오늘 새벽에 도쿄 쓰키지 어시장에서 비행기로 실어온 참다랑어와 해물을 자랑하는 곳도 있다. 당일 항공 직송이라고 광고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어느 계곡의 어린 양고기를 냉장으로 비행기 운송해 왔다고 하는 곳도 있다. 푸아그라를 프랑스 산지에서 비행기로 실어 냉장으로 줄곧 운송에 운송을 거듭하여 내는 식당도 있었다. 아마도 그 푸아그라는 중량의 몇 배쯤 되는 항공유와 디젤유를 소모하고서야 우리 입에 넣어졌을 것이다. 프랑스 내륙의 트럭-공항-비행기-한국 공항-트럭으로 수입사에 도착한 푸아그라는 다시 트럭을 타고 식당까지 운송되었다. 푸아그라는 오리나 거위간이지만,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은 미래를 걱정한다. 지구까지는 몰라도 자식의 미래는 행복하길 바란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언젠가는 죽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유전(재산까지도)한다. 그래서 자식 세대에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하다못해 국민연금이 사라지는 걸 걱정한다. 그게 인간의 우주적 섭리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당대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비를 지향한다. 앞서의 항공 운송 사치품이 그렇다. 푸아그라가 닭간이나 소간보다 더 맛있는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시절을 살아가면서 후대에 뭔가를 남겨줄 궁리는 하지 않는다. 쓸 돈과 권력이 있으니 일단 쓰고보자는 것인가. 자연은 파괴되면 복구하기 힘들다. 무한교역의 시대다. 지구 어디서든 돈만 주면 물건을 구해서 들어온다. 교역의 수준을 넘어 파괴적인 인간의 욕심에 의한 침탈 같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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