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절망을 튀기는 치킨집

치킨이 어린 닭을 뜻하는 영어가 아니라, 한국에서 팔리는 튀긴 닭의 별칭이라는 건 다 아는 얘기다. 게다가 요새는 ‘치맥’이란 말을 모르는 시민도 거의 없을 것 같다. 대구에선 그런 이름을 걸고 국제축제도 연다고 한다. 치맥은 치킨에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노고를 풀고 친교하는 가난한 시민들의 대표 술자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전기구이 통닭에서 시작한 우리의 닭고기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2마리 정도 되고, 나라 전체로 보면 6억마리 남짓 한 해에 도살된다. 닭 산업이 5조 얼마를 왔다갔다 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간혹 사오던 닭은 종이봉투에 싸인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기름이 쪽 빠져서 담백하고 고소하던 그 닭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식 튀긴 닭에 밀려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켄터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래 튀김 닭은 미국 남부의 요리였다. 미국에서 튀긴 닭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아픈 역사가 있다. 미국 남부의 노예들은 살코기는 ‘주인’에게 바치고 부산물을 먹었다. 목, 발, 갈비뼈 같은 부위였다. ‘먹잘 것’ 없는 부위를 요리하기 위해 동원한 조리법이 튀김이었다. 기름을 넉넉히 써서 ‘딥(deep) 프라이’ 방식으로 튀기니 억센 부위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우에하라 요시히로 <차별받은 식탁>). 남부의 상징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그렇게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외국에 파병된 병사들에게도 공급되는 미국의 상징적인 요리가 됐다.




그러던 것이 한국의 국민음식이 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우리 군인들도 휴가 나오면 짜장면과 함께 가장 먼저 찾는 음식이다. 튀긴 닭은 하나의 완전체를 먹는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양계 기술의 발달로 닭고기 값이 싸지면서 가벼운 값에 한 마리를 통째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튀김은 밋밋하던 닭에 고소함을 더해주고, 양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류가 사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성공적인 가축이 된 닭은 튀김 기술을 만나 절정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반면 치킨은 많은 이들을 아픔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적은 비용과 특별한 기술 없이 창업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몰려들면서 과당경쟁과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생겼다 하면 치킨 프랜차이즈이고, 열었다 하면 치킨집인 것이 우리의 우울한 현실이다. 고용은 줄고 그나마 임시직과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간다. 그 와중에 실업률은 높아지고 있다. 먹고살 방법이 없는 가난한 이웃들은 그나마 만만한 먹는 장사에 투신한다. 그러나 과당 경쟁으로 남는 게 없다. 원자재 값 상승으로 닭 값은 계속 오른다. 더 많은 실업자와 창업자들이 이 좁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동네 치킨집에서 우리 이웃이 튀기고 있는 그것이 절망의 치킨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기름 속이 캄캄하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경향DB)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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