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밥이 ‘갑’이다

요리사들은 밤늦게 집에서 식사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사기 주발에 담겨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잠자던 아버지의 밥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늦게 귀가해서 그 밥뚜껑을 열면 구수하고 푸근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밥에도 향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국 음식은 밥이 ‘갑’이다. 밥을 중심으로 놓고 모든 음식의 배열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예 밥이란 곧 식사를 의미한다. 부자들이 백만원짜리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그저 ‘어이, 밥 한 끼 합시다’라고 말한다. 힘들 때 우리는 친구에게 밥 사면서 ‘밥심으로 버티자’고 어깨를 툭 친다(이거 어디서 본 표현이다). 직업도 밥벌이라고 부르고, 영양과잉 시대인 요즘도 ‘식사하셨느냐’가 인사다. 밥은 우리 민족에겐 생존의 시종일관이었고, 몸이고 정신이었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인민들을 추동하던 말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그날까지”였을까. 

 


실제 밥상으로 봐도 한식은 밥이 중심이다. 여기서 밥이란 생명이거나 한 상의 식사를 떠나 전분질의 구체적인 ‘입자(粒子) 곡식’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식의 밥 먹기는 좀 특이한 점이 있다. 서양에서도 쌀을 먹는다. 내가 있었던 이탈리아는 특히 쌀을 좋아한다. 그들의 쌀요리를 리조토라고 부른다. 반드시 쌀에 소금간을 하고 양념을 쳐서 먹는다. 서양의 쌀요리인 파에야나 라이스파이도 모두 간을 한다. 맨밥의 맛을 그들은 잘 모른다. 한국식의 쌀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쌀에 양념을 하지 않고 어떻게 먹느냐고 의문을 표시한다. 그들이 일본식 초밥을 좋아하는 건, 밥에 양념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양은 빵을 주로 먹는다. 빵이란 곱게 가루내서 효모로 부풀리는 과정을 통해 마음껏 모양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속에 뭘 넣기도 좋다. 빵이 쌀밥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공기에 의해 모양을 갖춘다는 점이다. 쌀밥은 수분이 들어갈 뿐 효모로 부풀리는 것이 아니어서 항상 일정한 모양으로 익혀 먹게 된다. 이런 점에서 나는 동양과 서양 문화의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입체와 조형을 강조하는 서양과 평면적이고 보수적인 동양의 차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밥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바친다. 대부분의 농산물이 수입개방되는 와중에도 쌀은 최후의 순간까지 순도를 지켰다. 그렇지만 이런 우리의 쌀 사랑은 정신이나 선언적인 부분에 그치는 듯하다. 다채로운 반찬으로 입맛을 유혹하는 고급 한식집들도 막상 가보면 형편없는 밥을 낸다. 아침에 해두었다가 저장해서 바짝 마르고 냄새 나는 밥을 저녁에도 버젓이 낸다. 아깝기는 하겠지만 그건 죽은 밥 같다. 게다가 스테인리스 그릇에 뚜껑을 덮어 보관하는 바람에 밥이 눌려서 입자의 탱탱한 맛이 사라진다. 어려서 먹었던 윤기 자르르 흐르는 좋은 쌀밥의 맛을 혀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웬 조화인지 그런 밥을 먹을 기회가 없다. 내 혀가 바뀐 것인지, 쌀 품종이 달라진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푸석푸석하고 거친 밥 한 그릇을 놓고 사뭇 우울해져버리고 만다. 참기름 바른 것 같은, 기름기 잘잘 흐르는 좋은 밥을 만나기는 틀린 것일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