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곱빼기’의 추억

옛날에 누나랑 걸어서 통학하던 때가 있었다. 학교까지 4㎞는 좋이 되는 꽤 먼 거리였다. 엄마는 차비를 주었지만 초등학생이던 그때 이미 워낙 알뜰한 누나는 나를 꼬드겨 한 시간을 걸어 통학했다. 나는 걷기가 싫어서 투정을 부렸고, 그때 누나가 내게 내민 미끼(?)는 빵이었다. 이름 하여 곱빼기! 보통 빵보다 훨씬 두툼한 빵이었다. 그 빵을 씹으며 나는 길고 긴 통학길을 걸었다. 그 덕에 지금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누나에게 감사하고, 곱빼기란 빵을 만들어 팔았던 제빵회사에 감사한다.




곱빼기란 말은 외국에서도 자주 쓰인다. 이탈리아에도 있다. 돈을 조금 더 내면 넉넉하게 스파게티를 준다. 대개는 그램(g) 수를 지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1인분에 100g이 보통인데, 200g을 달라거나 150g을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값은 무게별로 정확히 올라가는 게 아니다. 적당히, 주인의 인정에 따라 조금 더 받는 둥 마는 둥 한다. 빅맥이 아마도 누구나 이해할 만한 곱빼기일 것이다. 값은 20~30% 더 내지만 양은 절반쯤 더 된다. 곱빼기란 어원 자체는 두 배를 뜻하겠지만, 실제로는 절반을 추가하는 게 보통이다. 어지간한 사람은 두 배를 먹기는 좀 그렇고, 보통으로는 양이 안 차는 상황이 흔하다. 딱 그런 상황에 맞는 것이 인정이 넘치는 곱빼기가 아닌가. 짜장면도 그렇다. 양은 절반 정도 더 주지만, 값은 보통 500원만 더 내면 된다. 얼마나 인정 넘치는 마음인가. 다른 곱빼기와는 달리 짜장면만 유독 단돈 500원 정도의 추가금이 고작이다. 짜장면이야말로 서민들의 주린 배를 여전히 측은해하는 든든한 이웃인 게다.




얼마 전에 잘나가는 냉면집에 갔다가 기분이 좀 상했다. 곱빼기는 아예 없고, 사리를 추가하도록 되어 있는데 자그마치 7000원인가 하는 값이었다. 아무리 메밀 값이 비싸기로서니 이건 좀 서글픈 기분이다. 달랑 500원만 더 받는 곱빼기의 인정까지는 아니어도, 사리 추가가 어지간한 냉면 한 그릇 값이라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아직도 곱빼기 메뉴가 있는, 양은 넉넉하게 값은 조금 더 받는 그 특유의 여유를 가진 냉면집을 찾는다. 면발 한 사리 더 얹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육수도 넉넉하다. 냉면집에서 면은 더 줘도 육수는 더 안 준다는 말이 있다. 육수 값이 비싸기 때문이겠다. 그 냉면을 후루룩 들이켜면서 세상살이의 곤란한 지경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말미가 있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한 칼 슬쩍 더 끊어주는 푸주한의 마음이 있었을까, 나는 초라한 사람에게 더 인정 있는 대인(大人)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요즘 어려운 시절이다. 외식업이 힘들다. 재료비는 오르고 손님은 줄어든다. 창업자들은 외식업으로 주로 쏟아진다. 스파게티 면을 말면서도 그 넉넉한 곱빼기를 생각하라고 나를 다독인다. 다들 어려울 때, 그때 내미는 손이 따스한 법이고 그 인정이 더 고마운 법이다.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부엌에서 일하는 모든 요리노동자들의 마음에 곱빼기의 정서가 깃들면 좋겠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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