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강적은 ‘임대차보호법’

자영업자 700만 시대다. 인구의 절대 다수가 무언가 장사를 해서 먹고 살거나, 그 가족이라는 얘기다. 요새 부쩍 친구, 선후배들의 상담 전화가 많다. 직장에서 나왔다거나, 앞으로 ‘나와야 할’ 처지인데 대책이 없느냐는 하소연이다. 내게 전화를 건 배경은 당연하게도 요리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머리 허연 한 선배는 이미 어느 노동기관에서 운영하는 요리과정을 다니고 있다. 그가 어설픈 솜씨로 주름살을 잔뜩 얹은 채 무딘 칼질을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무너진다. 그는 “여, 곧 널 따라잡을 테니 긴장하라고!’ 하면서 농담을 하지만, 그 행간에 깃든 슬픔을 모르지 않는다. 주말마다 나와서 설거지라도 하면서 일을 배울 수 있느냐는 요청도 한두 건이 아니다. 예전에는 취미로 요리를 배우려는 부탁이었으나, 이제는 그야말로 절박한 생계형이다. 동네 어귀에 밥집이나 술집이라도 차려(그래도 내가 사회생활 하며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죽기야 하겠어?) 밥줄을 이어보겠다는 뜻이다.

 


(경향DB)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은 녹록지 않다. 거친 바다에 던져진 일엽편주처럼, 풍랑과 거센 바람에 맞서야 한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뜻밖의 강적을 만나 난파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임차 문제다. 최근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다. 보증금의 액수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 폐지되고, 5년간 영업을 보장받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철거 등의 계획이 있으면 임대차계약 당시 고지토록 한 것도 주요 골자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게 아니다. 임대료 상한이 폐지됐다(기존 9퍼센트). 임대료를 대폭 올려 자연스럽게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더구나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 5년간 영업권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허위로 매도계약을 체결한 후 나가라고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보호법 개정은 그나마 수많은 시민단체와 뜻있는 분들의 투쟁으로 끌어낸 합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측면보다는 임대인의 권리가 과하게 보호받고 있다. 권리금 문제까지 나오면 더 할 말이 없다. 대통령도 권리금이 있다는 걸 아는데, 법률로는 그 권리가 실재하지 않는다. 700만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적어도 일이천만원에서 많게는 몇억원의 돈을 계약하면서 주고받는데도 아무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 이상한 나라! 당연히 그 막대한 액수에 대해서는 과세도 없다. 법률적 인정이 없으니 세금도 못 걷는다. 지하경제란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권리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몇 중개인과 건물주의 농간까지는 여기서 다 밝힐 수도 없다. 한마디 더 하자면, 이런 판국인데도 영세 자영업을 보호하는 법률 개정에 대해 몇 줄이나마 써주는 언론도 진보적 매체 외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죽고 사는 데 진보 보수가 어디 있는가. 진짜 보수라면 국민이 먹고사는데 더 열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공영방송이라는 데서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에 관해 심층보도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느 체조선수까지 초대해서 프로야구 시구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아아, 시구 장면 뉴스도 아니고 무려 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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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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