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의점 삼각김밥 예찬론자다. 피라미드를 닮은 두툼한 정삼각형의 모습도, 김으로 둘러싸인 검은색 외관도 듬직하다. 참치마요, 전주비빔밥 등 구색도 다양하다. 그런데도 가격은 몇년째 1000원 내외로 저렴하다.
내가 삼각김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그때 나는 주말이면 집 주변 도서관을 자주 갔는데 그 도서관 근처에는 식당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면 곧 퍼져버리는 탓에 좀 더 도서관에 있을 요량으로 삼각김밥을 찾게 됐다. 유레카였다. 김치찌개나 비빔밥 같은 정식의 포만감은 없지만 허기는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참치마요를 즐겨 먹는다. 그러나 편의점 도시락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고기와 햄이 중심이었고 지나치게 짠 탓이었다. 그렇지만 일요일 편의점에 가보면 청년들은 물론 70이 넘은 노부부가 삼각김밥과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청년 실업과 노인 복지의 커다란 구멍을 편의점 삼각김밥(그리고 도시락)이 정부를 대신해 메워주고 있는 것을 나는 10년 넘게 봐 온 셈이다. 그래서 나는 삼각김밥을 보면, 콩쥐 계모가 콩쥐에게 내어준 밑 빠진 독을 메워주던 두꺼비를 떠올린다.
그런데 나의 두꺼비, 삼각김밥이 앞으로는 바빠질 것 같다. 식품 가격 인상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심상치 않게 오르던 식품 물가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석유값은 전쟁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식품값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제 서울에서 점심으로 1만원은 우습게 나간다.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은 더 심각하다.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뉴욕에서는 감자튀김이 15달러, 샌드위치가 18달러를 할 정도로 음식 가격이 수십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제 휘발유가 아니라 식품 가격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최근 지표는 더욱 나쁘다. 미국 인구조사국(USCB)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미국 2500만명의 성인이 지난 7일 동안 충분히 먹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크리스마스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식품 가격 급등의 원인은 전쟁보다는 기후 붕괴와 더 밀접하다. 서울에는 80년 만의 폭우가 내려서 강남이 잠겼다. 반면 미국과 멕시코는 마실 물조차 걱정할 정도로 가뭄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도 가뭄이 심각하다. 기후 붕괴는 농수산물 생산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극심해지고 있는 가뭄·홍수·산불 같은 기후 붕괴는 식품 가격 상승이라는 ‘뉴 노멀’을 우리 식탁에 초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각김밥은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두꺼비 노릇을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나의 두꺼비가 만인의 두꺼비가 되는 뉴 노멀이 나는 반갑지가 않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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