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이탈리아 총선에서 승리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불린다. 2012년 창당한 이 당은 파시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만든 단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멜로니는 동성애, 낙태, 이민자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여자 무솔리니’인 멜로니가 총리가 되면 유럽이 요동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데 멜로니의 총선 승리 후 첫 공개 행보는 의외로 음식이었다. 그는 1일(현지시간) 밀라노의 농민집회에 참석해 농민단체들의 합성식품 금지에 대한 청원서에 서명했다. 이 단체들은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기술 등으로 생산된 고기나 인공 우유가 국가 정체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왔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환경, 동물복지, 건강 등을 이유로 대체육 소비를 늘려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은 2019년 전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가 140억달러(20조원)에서 2029년에는 10배인 14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멜로니는 왜 트렌드와 반대로 가려는 것일까? 멜로니는 총선 승리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탈리아인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국가에 ‘존엄과 자부심’을 되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과제”라고 말했다. 그가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존의 전통적 우파와 다른 전체주의적인 네오파시스트라는 것을 보여준다. 파시스트들은 전통과 남성성을 숭배하고 자유, 합리, 인권, 평화 같은 근대성을 부정한다. 멜로니는 ‘하느님, 국가, 가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새로운 음식은 늘 논쟁적이었다. 음식은 소화기관이라는 가장 내밀한 공간을 통해 섭취되는 데다 공동체 정서를 응축하고 있다. 그래서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대체육·배양육 등 새로운 단백질이 인류가 수백만년 동안 먹어온 기존 육류를 얼마나 대체할지는 미지수다. 맛과 안전성 등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다양한 문명의 경계에 있던 이탈리아는 음식에서는 꽤 진보적이었다. 아랍에서 건너왔지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 된 파스타와 젤라토가 그렇다. 지나치게 붉어 악마의 열매로 취급받던 신대륙의 토마토를 피자와 파스타에 넣기 시작한 것도 이탈리아였다. 파스타·피자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된 것은 개방성 덕이었다. 새로운 음식은 파시스트들이 선호하는 신화나 종교의 대목처럼 어느 한 위대한 영웅에 의해 빠르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공동체 구성원의 개방성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수용된다.
재미있는 점은 파시즘의 창시자인 무솔리니가 좋아했던 음식은 전설 속의 남성 영웅들이 모여 즐겼을 법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냥한 고기쯤이 아니라 올리브기름과 레몬즙을 듬뿍 뿌린 샐러드였다. 중세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였던 로마냐의 산촌 마을에 살던 대장장이 아들의 입맛에 맞는 소박한 음식이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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