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한때 이대 앞은 이 일대에서 제일 잘나가던 동네였다. 1980년대에는 이른바 홍대 앞 상권이라는 게 없다시피 했고, 연대와 이대 앞이 이 일대 상업지구를 양분하고 있었다.

연대 앞에 ‘고바우집’이나 ‘만미’ 같은 묵직한(?) 돼지고깃집이 많았다면, 이대 앞은 아기자기한 커피숍이나 분식집으로 유명했다.

 

물리 점수가 빵점이었던 나는 이대 앞 커피숍 ‘심포니’에서 ‘진공 원리로 추출되는’ 사이펀 커피를 마셔보고 충격에 빠졌다.

 

 

아랫물이 윗물로 흐르는 비상식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연대 앞 ‘독수리다방’의 ‘니맛도 내맛도 아닌 다방커피’에 비할 바냐, 이러고 그 커피를 마시러 다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붙인다면, ‘독수리다방’은 지금 매우 질 좋은 커피를 파는 멋진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시절에도 커피 맛은 좋았을 텐데, 내 혀가 알 리 없었겠지.

연대 앞이 ‘독수리다방’이었다면 이대 앞의 상징적 약속 공간은 ‘그린하우스’였다.

여학생들은 약속도 알뜰하게 ‘돈을 써도 남는 게 있는’ 빵집에서 한다고들 했다.

 

그 빵집에 남학생들이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학생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는 탁자 사이로 수없이 꽂히는 시선을 보면서 용감하게 ‘런웨이’를 해야 했으니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차피 여학생 천지지만 조금 나은 곳은 ‘가미분식’이었다. 다들 떡볶이나 우동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 형편이라 누가 드나드는지 신경을 안 썼다.

 

당시만 해도 여대생이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다. 이대 앞에는 그런 해방구가 몇 있었다.

 

좀 히피 기운이 있고 학번 높은 언니들은 ‘섬’이라는 작은 카페에서 병맥주를 마셨고, 운동권 쪽은 ‘와글와글’이라는 해물잡탕찌개집 단골이었다. 담배 연기 가득한 콧구멍만 한 술집에서 청바지 차림의 이대생들이 소주를 마시고 울분을 토했다.

 

연대 앞의 전설적인 술집 ‘페드라’에 맞먹는 이대 운동권의 성지(?)였다고나 할까. 1986, 1987년처럼 엄중하던 시기에는 이대 앞에도 화염병이 등장했다. 그 투척거리는 짧았으되, 이대생의 기개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한 영화에서 김혜수가 날린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대사였다. 하지만 부정적인 허세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 신문에 나온 사진 한 장을 보는데 살짝 울컥했다. 학교 상징인 녹색 머플러를 두르고 시위에 나선 교수와 학생이 깊게 포옹하는 장면이었다. 이제 그들이 진심으로 “이대 나온 여자, 이대생 가르치는 교수”임을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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