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요리사와 허파

일종의 해프닝이겠지만, 전에 고등어 미세먼지 소동이 있었다. 고등어를 구울 때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가 나온다는 뉴스였다. 집 안의 미세먼지가 보통 50마이크로그램을 넘지 않는데, 이때는 1000을 초과하는 데이터가 나왔다. 포털의 댓글에 난리가 났다. 무서워서 생선도 못 굽겠다는 거였다. 고등어가 안 팔린다는 뉴스도 잇따랐다.요리사들은 이 소동극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웃었을 것이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요, 이런. 생선구이집에서는 하루에 수백 마리는 좋이 구울 것이다.

 

고기는 또 어떤가. 삼겹살이나 등심구이집은 뿌연 연기가 식당을 가득 채운다. 연기 배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수많은 프라이드치킨집에서 배기시스템을 잘 갖춰놓고 일하고 있을까 싶다. (초)미세먼지의 별명은 ‘침묵의 살인자’다. 천천히 호흡기와 심혈관계에 영향을 준다. 인간의 허파는 어지간히 강해서 이런 공격을 오랫동안 감내한다. 그래서 (초)미세먼지가 요리사의 병증에 어떻게 나쁜 영향을 주었는지 쉽게 밝혀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쉽게 말해서 호흡기병에 걸리더라도 산업재해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요리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보통 손님 식탁에서 고기를 굽는 식당에는 홀에 연기가 늘 배어 있다. 홀에서 일하는 이른바 ‘서버’들의 호흡기에 영향을 준다. 담배까지 피우던 시절에는 곱절로 허파가 상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실태조사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식당 부엌의 (초)미세먼지 데이터 기준이 있는지 없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식당이 밀집한 상가에서는 배기시스템이 뒤엉켜서 내 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요리할 때 나오는 연기와 분진이 넘나든다.

 

희한하게도 한국은 실내 인테리어는 점점 더 멋있어지는데 배기시스템은 별로 발전이 없다. 정부에서 요리사의 호흡기 질환에 대해 조사하거나 검진한다는 말도 못 들어봤다. 매년 건강진단을 받기는 하지만 엑스레이 한 장 찍는 게 다다. 그것도 호흡기 검사라기보다는 결핵 같은 전염성 질환을 염두에 둔 검사인 듯하다.

 

이런 얘기를 내 개인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동료 요리사들의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일 끝나고 코를 풀면 새카만 덩어리가 나온다’ ‘숨이 막혀서 요리사 일을 그만뒀다’는 글도 있었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요리사 건강 따위를 생각했겠느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보통의 가정집에서는 완전연소되지 않은 가스가 호흡기와 뇌 건강을 해친다고 하여 전기 인덕션 레인지를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식당은 하루 종일 가스를 틀고, 그 사용량도 가정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업 보건에 대해 매년 예산이 책정되고 어딘가에 지출하고 있을 텐데, 노동자 숫자로 최상위권에 드는 요리 직군에 대해 어떻게 쓰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해보지 못했다.

 

언젠가 연로한 요리사 선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오래전 식당의 주 연료였던 연탄이 아마도 수많은 요리사들을 천천히 죽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 제명에 죽고 싶은 게 요리사의 마음이랄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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