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 | 신시컴퍼니 대표
나는 욕심을 품는 데 인색하지 않다. 아끼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든 욕심껏 하라”며 권한다. 이루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 또는 욕심이 없었다면, 세상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하면 화가 되는 법. 욕심이 지나쳐 탐욕이 되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곤란함과 직면하게 마련이다. 나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1999년 극단 신시의 2대 대표로 선출된 직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계는 삼십대 중반의 젊은 수장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그 시선이 곱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에서는 젊은 패기를 높이 사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역량 부족을 문제 삼았다. 당시 나는 대표로 선출되기 직전 국내 최초의 라이선스 뮤지컬 <더 라이프>를 통해 공연제작자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경향신문DB)
“과감한 시도로 공연계의 기우를 단번에 무너뜨려 주겠어!” 진중한 주제의식과 특색 있는 무대 장치가 인상적이었던 뮤지컬 <갬블러>라면 이러한 포부를 실현시켜 주리라 확신했다. 이 작품은 특히 알란파슨스 프로젝트의 작곡가인 에릭 울프슨의 음악으로 세계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운 좋게도 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차범석 선생께서 지금의 아르코대극장 기획공연으로 <갬블러>를 허락하셨다. 남경주, 이정화, 주원성, 전수경, 허준호 등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되었고 <더 라이프>를 진두지휘했던 연출가 한지섭이 다시 한 번 신시와 호흡을 맞췄다. 초연임에도 객석 점유율이 70%를 웃돌았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해냈어!” 쾌재를 부르며 보란 듯이 의기양양함을 뽐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잠깐의 호재가 독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갬블러>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한 국립극장 최진용 극장장은 국립극장에 이 작품을 올리라 권했다. 솔깃한 제안을 거름 삼아 자만심이 무럭무럭 자랐다. 흔쾌히 이를 수락했고, 앙코르 공연 준비에 돌입했다. 초연이 막을 내린 지 불과 두 달 만에 말이다. 그 시절만 해도 뮤지컬이 관객들에게 낯선 장르였음을 간과한 불찰이었다. 성패는 불 보듯 뻔했는데 과한 욕심과 자만으로 뒤범벅된 내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았다.
재공연의 실패로 극단이 안게 된 금전적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배우들의 출연료를 비롯해 지불해야 할 돈이 산더미였다. 급한 마음에 신혼집의 전세보증금을 빼 빚 청산에 나섰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두 살 난 딸아이와 아내에게도 면이 서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무작정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전셋집 지키자고 그간 쌓아올린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진 않았다. 내 과욕이 부른 참사로 극단과 집안은 엉망이 돼버렸다. 한푼이 아쉬운 상황, 급한 마음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외연수비까지 미리 받아 사태 수습에 썼다.
아내는 충격으로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를 유산했다. 유산 후 찾아든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살필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런 아내를 뒤로 한 채 당장 뉴욕으로 연수를 떠나야 했다. 해외연수비를 받아썼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못난 가장,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표. 형편없는 나 자신과 마주하고 보니 그제서야 과욕이 후회됐다.
그리스신화에 보면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일화가 등장한다. 아들과 함께 미궁에 갇히게 된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위해 밀랍으로 새의 깃털을 엮어 날개를 만든다. 이카로스의 몸에 날개를 달아준 그는 아들에게 너무 높이 날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비행에 재미를 느낀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채 고공행진을 시도했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나머지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다.
과욕에 동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능한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나 이카로스처럼 과욕의 경계에 서게 된다. <갬블러>의 초연 강행이 건전한 욕심이었다면, 재공연은 과욕이었다. 과욕을 자제하는 것과 건강한 욕심을 키우는 것은 별개다. 나는 욕심이 재앙을 부른 이 일을 곱씹으며 이후 과욕에 대한 경계심이 스스로 느슨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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