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 환경재단 대표
지금은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해 종이와 플라스틱, 병, 음식물 찌꺼기를 분리수거하고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그런 제도가 없었다. 아파트에는 층마다 쓰레기 투입구가 있어 투입구에 형광등, 플라스틱, 건전지, 음식물 찌꺼기 등을 그대로 버렸다. 이 쓰레기는 모두 1층으로 떨어져 1층에 사는 주민들은 바퀴벌레와 악취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1층 아파트는 집값도 쌌다. 식당에서도 1회용 나무젓가락을 한 번 쓰고 버렸다.
당시 소설가 이외수씨는 나에게 ‘쓰레기란 인간이 남긴 욕망의 흔적’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1988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환경회의에서 인도네시아 대표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 나라는 우리나라 나무를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수입한다. 한국에서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나라 숲이 그만큼 사라지고 사막화된다. 그러니 환경운동가인 당신부터 일회용 젓가락 대신 계속 쓸 수 있는 이 젓가락을 구입해서 사용하라. 그러면 그만큼 우리의 숲이 보전될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가방에 항상 젓가락을 가지고 다녔다. 식당 주인도 이상하게 생각했고, 김근태 선배는 “최열과 밥을 먹으면 밥맛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핀잔을 줬다.
또 주변의 동료는 “최열! 네가 공해다. 맛있게 잘 먹는 햄, 소시지를 보고 빨갛게 물들인 발색제가 몸속에 들어가면 아미노산과 결합해 니트로소아민이라는 발암 물질로 바뀐다고 겁을 줘 가공식품을 못 먹게 한다”는 농담을 했다.
그 당시 나는 매일같이 피해현장의 주민을 만나 조사하고 강연을 했다. 20년 전쯤 출장을 갔을 때다. 내가 없는 사이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큰 라면 상자 2개, 양복 상자 1개, 그리고 편지 1통을 남겨 놓고 갔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주부이다. 최열 의장의 방송을 듣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뭐라도 실천하고픈 마음에 최열 의장의 글을 스크랩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쌓여 양복 상자에 가득 찼다.”
내가 신문·잡지에 기고한 글에 밑줄 친 흔적도 보였다. 2개의 라면상자에는 비닐봉지가 정리되어 있었다. 1500장 정도 되는 이 비닐봉지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받은 것을 모아 물로 씻어 정리했다고 한다. 편지에는 이 비닐봉지를 리어카 행상을 하는 사람이나 식품가게에 줘서 다시 쓰게 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내용이 있었다. 또 하나는 그분이 일한 급여인 듯한데, 한 달에 30만원씩 1년 동안 모은 360만원이 봉투에 들어 있었다. 당시 총무부장과 상근활동가에게 물어보니 신분을 밝히지 않아 연락처를 적어 놓지 못했다고 한다. 방송에 출연하여 이 사연을 소개하고 그분의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분을 찾지 못했다.
나는 금년 5월이면 환경단체에서 활동한 지 만 30년이 된다. 전두환 정권 때는 환경운동을 반정부단체로 간주해 탄압이 심했다. 사무실 앞에는 기관원이 상주해 있었고 공해로 피해 받는 주민을 만나면 경찰이나 기관원이 조사를 했다. 온산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이 공장에서 나오는 유독성 가스와 폐수로 뼈마디가 쑤시는 온산병에 걸렸다고 발표한 이후 잦은 연금을 당했다. 대학 강연 날에는 경찰관이 아파트 앞을 지켜 집에서 연금되는 신세였다. 지금은 공기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쓰레기 분리수거는 모범국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중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쓰레기를 분리해 놓은 것이라 한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 정도로 공기와 물, 쓰레기 문제가 개선된 데는 정부, 지자체, 기업의 노력도 크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실천한 사람들 덕분이다.
나는 20년 전 귀중한 성금을 보내주신 그 여성을 지금이라도 꼭 만나고 싶다. 아니면 통화라도 하고 싶다. 기부를 한답시고 수표 크기를 수십 배로 확대해 보도자료를 내는 기업을 보면 항상 그분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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