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50) 전무송 - 보신탕 한 그릇

전무송 | 연극배우

 

사춘기 무렵, 역사 속 위대한 영웅들의 행적을 전설 혹은 책을 통해 만나며 내 미래를 짧고 굵직하게 가리라 정하고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그렸다. 그러나 차츰 삶이라는 현실 앞에 그 영웅적 꿈은 눈 녹듯 사라졌다.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연극학교에 입학했다. 그것이 적성에 맞았던지 생(生)을 걸게 되고 차츰 그 세계에 빠져버렸다.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안갯속 같은 미래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집에서 독립을 하겠다며 나왔지만 방 얻을 돈이 없었다. 학교 계단 밑 쪽방 같은 빈 사무실에서 책상, 걸상을 침대삼아 지냈다. 끼니는 건너뛰거나 하루에 한 번 중부시장의 막국수 한 그릇으로 때우는 일이 많았다.

 

친구들이 술 한잔 살 땐 “밥 사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자존심 때문에 소주 한잔에 그 말까지 꿀꺽 삼켜버리곤 했다. 안주라도 많이 먹으면 될 텐데 배고픔을 들킬까봐 “마! 안주 많이 먹으면 소주 맛 떨어져!” 하며 일부러 소리치곤 했다.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 나는 안주 없이 술을 마신다.

 

연극인 전무송 I 출처:경향DB

 

어느 날, 다른 극단에서 연극 출연 제의가 들어 왔다. 날아갈 듯 들떠 있는데 해당 연극의 연출가가 “대표님이 거절하셨다. 다음 기회에 보자”고 했다. 몹시 실망한 나는 술을 잔뜩 먹고 소란을 피웠다.

 

다음날 내가 속한 극단의 대표한테 불려갔다. 꾸중 들을 각오로 갔는데 대표님, 아니 나의 스승님은 인자한 모습으로 말했다. “배우가 무대에 바로 서려면 10년이 가고, 제대로 걸으려면 10년이 가고, 제대로 말하려면 10년이 간다. 내가 너를 막은 것은 지금은 때가 아직 아니었기 때문이야.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참 고마운 말씀이지만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건 결국 내가 인간이 덜됐다는 뜻 아닌가. 슬프고 비참한 심정으로 남산 팔각정에 올랐다. 사흘하고도 두 끼를 더 굶은 뒤라 몸이 휘청거렸다.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저 많은 집들 중에 내가 쉴 곳은 단 한 군데도 없구나. ‘포기하자…’ 하고 험한 생각이 드는데 송충이에 갉아 먹히고 있는 작은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참, 너도 괴롭겠다. 그렇게 갉아 먹히면 어떻게 살아남겠느냐. 내 꼴과 마찬가지구나.”

 

문득 보은의 정2품 소나무가 떠올랐다. 살아남아야 그렇게 품(品)을 받고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소나무(茂松)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자고 다짐했다. 그 이후 괴롭고 힘들 때마다 내 이름에 ‘너는 정2품 소나무다’라며 최면을 걸었다.

 

바로 그 시절이었다. 명동 쪽에서 연출하던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 심금을 털어놓고 “좋은 연극 만들자”며 서로 위로해주고 다짐하던 친구였다. 소식을 전한 친구와 이태원동 아픈 친구의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있던 그 친구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고 차도 내놓고 연극 얘기도 했다. 병문안이랍시고 찾아간 우리는 빈손이었지만 친구는 개의치 않았다. 워낙 긍정적이고 소탈한 그 친구의 기색은 밝기만 했고, “공연자금 없이 하고 싶은 연극을 할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그때는 우리 모두 훌륭한 배우, 연출가로 커 있겠지” 등 희망적인 환담을 나눴다.

 

그 말끝에 친구가 웃으며 농담조로 “야, 지금 보신탕 한 그릇 먹으면 힘이 좀 나겠는데 말이야”라고 했으나 우리는 겸연쩍게 웃기만 했다.

“그래, 빨리 건강을 되찾도록 해라. 그때 보신탕 놓고 소주 한잔하자”고만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놈도 우리 이해해 줄 거야. 빈털터리라는 걸”이라며 스스로 변명했다.

 

며칠 후,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 날 이후 한동안 밖에 나오지 못하고 ‘보신탕 한 그릇 사주지도 못한 못난 놈이 무슨 친구라 할 수 있는가!’라며 자책했다. “보신탕 한 그릇 먹으면 힘이 좀 나겠는데 말이야” 하며 허허 웃던 그 친구와 나의 부끄러웠던 모습이 지금도 마음 아프게 떠오른다. 나의 스승님은 그러셨는데. 먼저 인간이 되어야 훌륭한 배우가 된다고. 인간의 희로애락의 갈등이 무엇인가 깨달으라고. “친구야, 정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