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 피아니스트
음악인으로서 나의 위치는 비교적 다양하다. 1994년 귀국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개교와 함께, 연주자이면서 교육자라는 역할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그동안 나는 한 학교의 교수라는 직분 외에도 2007년 금호 챔버 소사이어티 음악감독과 2008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맡은 책임이 더욱 커졌고 많은 사람의 관심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이러한 나의 변화에 대해 적지 않은 인터뷰를 했다.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는 가지고 있지만, 음악감독·연주자·지휘자·교육자라는 각각의 역할은 모두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왜 이렇게 욕심을 내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여러 역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ㅣ 출처:경향DB
맞는 말이다. 나는 ‘음악’에 욕심이 많다. 수원시향의 상임지휘자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지방의 음악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수도권 근교의 교향악단은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 오히려 활성화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작은 작은 수도권의 교향악단이었지만, 지금의 수원시향은 2008년 교향악 축제에서의 공연 매진으로 최다 유료 관객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성공적인 미국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최근에는 소니코리아 레이블로 음반을 출시할 정도로 인지도 있는 교향악단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8월 예술감독을 맡았던 ‘피스 앤드 피아노 페스티벌(Peace & Piano Festival)’에서는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이 아닌 경기도 수원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아우르는 피아니스트 12명을 한자리에 모아 그 어느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축제를 펼쳤다.
이처럼 내 작은 힘이 보태져 우리나라 음악계가 발전할 수 있다면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은 게 내 욕망이다. 허황된 욕심이 아닌 이상, 음악으로 소통하는 일은 뼛속까지 음악인인 나를 항상 자극한다.
이러한 욕심의 근본에는 나의 정신적 지주인 고 오정주 교수로부터 배운 교육자로서의 자세가 있다. 누군가가 “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하면 나는 주저없이 “가르치는 일”이라 답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르침이란, 학생이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눈부신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지금의 학생들은 아주 손쉽게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연주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보다 궁극적인 선생의 역할은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한 학생의 인생을 가장 중요한 시기에 책임지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기에, 그 무엇보다도 책임이 무겁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 소중한 책임의 시작은 바로 내가 먼저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져 사람들과 여유롭게 밥 한번 먹기가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밥 한번 같이 먹는 것’이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데 나는 끼니를 김밥으로 때우기 일쑤다. 요즘같이 기분 좋은 봄에 꽃구경을 할 여유조차 없고 소중한 가족들을 챙기는 시간도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누구보다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해놓고 막상 내 자신은 전혀 소통을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부터 밀폐된 공간에서 피아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불어나는 일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학생, 교향악단 단원, 청중 등 많은 사람과의 소통 없이는 음악이 존재할 수 없고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좋은 사람들과 진짜 ‘밥 한번 먹을 수 있는’ 여유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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