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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10) 조재현 - 짜장면과 형

조재현 |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1970년대 초, 서울. 나는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 동숭동에서 태어났고 그곳의 대부분은 판잣집이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샤워 문화’가 당시에는 극소수 상류층만의 특권이었던 시절, 대다수 서민들은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 번꼴로 대중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아니, 묵은 때를 밀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엄마 손을 잡고 여탕에 들어가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던 그 시절. 가끔 그곳에서 같은 반 여학생을 만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번은 한 독살스러운 여자아이가 그 사람 많은 대중탕에서 “저 남자아이 내보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우는 통에 나는 여탕을 졸업하게 되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이 목욕탕에 가는 걸 싫어했다. 퀴퀴한 냄새, 기분 나쁜 수증기의 답답함, 그리고 때를 밀기 위해 뜨거운 몸에 물을 담그기가 왜 그리 싫었던지…. 여탕 졸업 후 일요일 아침만 되면 형하고 같이 목욕탕을 가라는 엄마와 가지 않겠다는 나 사이에 실랑이를 벌이는 게 행사가 되었다. 결국 엄마는 목욕탕에 가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아주 훌륭한 제안을 하셨는데, 그것은 목욕을 하고 나면 짜장면을 먹게 해주시는 아주 매혹적인 카드였다. 이때 형에게 주어진 미션은 ‘동생의 때를 밀어줘라!’였다. 형도 싫지 않았는지 엄마 말씀에 쉽게 따랐다.

 

배우 조재현 ㅣ 출처:경향DB

1시간가량 답답한 수증기를 꾹 참고 목욕을 하고 나와 짜장면을 먹는 쏠쏠함에 나는 점차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즈음 어느 날부터 엄마가 목욕비와 짜장면값이라고 주신 돈을 담당하던 나의 형이 변칙운영을 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한번은 목욕 후에 기쁜 마음으로 중국집에 들어섰는데, 평소 보통 두 그릇을 시키던 형이 ‘곱빼기 한 그릇’을 시키고 주인아저씨께 빈 그릇을 달라고 하더니 나눠 먹자는 것이었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형이었다. 나에겐 형과의 여섯 살 나이 차이는 스무 살, 그 이상으로 멀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가끔은 아버지보다 더 무섭고 어려운 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섯 살 차이의 남자 형제는 공감대가 이뤄지기 힘든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갓 태어났을 때 형은 초등학교 준비 중이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형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형은 대학을 가게 되고 내가 대학에 갈 때, 형은 군대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대화는 마땅히 없었다.

 

이러한 형이기에, 나는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조금 부족한 짜장면을 먹었다. 그래도 그때까진 참을 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주였다. 형이 곱빼기도 아닌 ‘보통 한 그릇’만 시키는 게 아닌가. 유독 형을 무서워하고 형 앞에서는 더욱 소극적인 아이로 변하는 나여서 정말 조심스럽게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한 그릇만 시키느냐”고. 형은 “나는 생각이 없으니 너만 먹어”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짜장면을 비벼 혼자 먹고 있는데, 어느 순간 맞은편에 앉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형이 꼴깍꼴깍 침을 삼키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 포착됐다.

내가 착해서는 절대 아닌 것 같고, 내성적이고 그 상황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보통 한 그릇도 거뜬하게 해치우는 내가 먹다가 반을 남겨 형에게 내밀었다. 형은 “됐다. 너나 먹어라” 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형의 눈과 입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걸 지나가는 세 살짜리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못 이기는 척, 내가 내민 짜장면을 받아 들고는 너무나도 맛있게, 단숨에 먹는 형을 보면서 이젠 내가 침을 꼴깍꼴깍 삼켜야 했다. 그때 나는 참… 슬펐다. 왜 내가 편히 짜장면 한 그릇도 먹게끔 못 해주는지…. 눈물이 나려 했지만 꾹 참고 집으로 가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엄마 앞에서 다신 형이랑 목욕탕에 안 가겠다고 말하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형의 행각은 들통이 났고, 나는 서럽기도 하고 형의 보복이 무섭기도 해서 더 크게 울었었다. 여섯 살 차이 형과의 추억이다.

 

그런 나의 형이 마흔을 며칠 앞두고 그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형이 떠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지금 살아 있으면 많은 것을 같이 공감하고 공유할 나이가 되어 있을 텐데…. 가깝고도 멀기만 한 여섯 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렵게만 지내던 우리 형제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했다. 지금 같이 짜장면을 먹으며 그 옛날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형! 우리 다시 만나면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켜 함께 먹읍시다. 고량주도 한잔하고요. 나, 술 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