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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9) 오지혜 - 이중현 선생님

오지혜 | 배우

 

 

 

이젠 장학관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래도 제겐 제 아이의 선생님이셨으니 그냥 영원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렵니다. 얼마 전 저는 한 신문사로부터 ‘만약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냐’는 질문과 함께 편지글을 요청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가족이었고, 이어서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부부에게 제 목숨보다 귀한 아이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해주신 분이니 가족 다음으로 감사를 드리기에 마땅한 분이시니까요. 아, 그렇죠. 실은 이 감사의 편지는 선생님이 항상 하신 말씀처럼 선생님 한 분이 아니라 학교의 기적을 만들어낸 아이 학교 선생님들 모두에게 드리는 편지라 해도 되겠네요. 아직 젊은데 생을 마치기 전 쓰는 편지를 쓰냐고요? 에이, 죽음이 어디 난 순서대로 오던가요? 죽음은 언제나 한 발 옮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저로선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되레 반갑답니다.

 

선생님이 교장공모제를 통해 우리 학교에 오시고 나서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보낸 지난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 학교는 공교육에서 감히 꿈꿀 수 없는 유토피아를 경험했습니다. 물론 전교생이 100명 남짓한 규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기적은 분명 선생님들의 건강한 교육철학과 그걸 실행에 옮기는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바탕으로 지금도 학교는 유기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최근에 매스컴을 너무 많이 타는 바람에 아이들이 갑자기 너무 느는 데서 오는 부작용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문제로 우리 학교가 흔들리지는 않으리라는 걸 믿습니다.

 

 

배우 오지혜 ㅣ 출처:경향DB

선생님이 임기를 마치고 경기도 장학관으로 가면서 말씀하셨죠? 교장 하나 바뀐다고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4년 동안 헛일 한 게 된다고. 그래요. 선생님, 지금 최영식 교장선생님을 중심으로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지난 4년의 기적을 잊지 않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아이들이 계속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도록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몰라요. 선생님도 소식 듣고 계시리라 믿고요.

 

우리 학교 학부모들이 유난히 관계가 좋은 것도 다 학교 분위기 덕택이죠. 규모가 작은 학교인데다 보호자들 모임이 잦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학부모들끼리 서로 형, 동생 하며 마치 고향 친구들처럼 술친구가 되다니…. 처음 전학온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우리의 이런 분위기 보고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물론 다들 금방 적응하셨고요. 하하. 우린 우리끼리 매일 즐거워요. 아이들도 마치 공동육아를 하는 마을처럼 키우고요. 아니, 솔직히 여기 와선 아이들을 키운다, 라는 생각 별로 안해봤어요.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니 노니까요.

 

그럼 아이들한테는 언제 신경쓰냐고요? 에이, 아시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회의해서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알아서 잘 놀고 있잖아요. 학교가 아이들을 학교의 주체로 인정해주니까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당최 뭘 졸라대질 않더라고요.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 하다못해 급식 배식조차 아이들끼리 회의를 통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학교생활을 통해 인정받는 만큼 책임지는 것을 배운 거죠. 참 자유의 가치를 진즉 깨달은 우리 아이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의 혁신이 필요한데 아이들 행복을 위해선 어른들 욕심만 내려놓으면 된다고. 불안한 건 그저 어른들일 뿐, 정작 아이들은 편안해한다고.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선생님.

 

한 인간의 부모가 돼서 아이에게 꼭 해줘야 하는 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만들어주는 거라죠? 그런 면에서라면 우리 부부는 좋은 부모였다고 믿어요. 그래서 혹 지금 신이 부르신다 해도 기쁘게 갈 수 있고요. 제가 이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바로 이중현 선생님과 지금 교장이신 최영식 선생님 그리고 조현초등학교의 모든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신께 감사드리며 제 생의 마지막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지금껏 그랬듯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