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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7) 조경란 - 남제주군 화순리의 어머니

조경란 | 소설가

 

 

 

어떤 분을 만난 지 하루 이틀 만에 무람없이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낯가림도 심하고 제 모친의 말대로라면 사교성이나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제가 말이에요.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 달랑 주소만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제주공항에 도착해 화순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 제 마음은 이미 몹시 지친 상태였을 겁니다. 누가 저를 밀어내서 간 것도 아닌데요. 화순 어머니. 돌아보니 그때가 십칠 년 전이네요.

 

1998년. 그 해, 저에게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늦깎이로 들어간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을 하게 되었고 첫 연애까지 시작했던 해였습니다. 오랫동안 집에만 들어앉아 있던 저로서는 실로 그 모든 일들이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어요. 바라던 대로 작가가 되긴 하였지만 신나지도 즐겁지도 않았던 건 제 성향 탓이었을 겁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당황스러운 채로 갈등하다가 다시 제 옥탑방에 들어앉아버렸습니다. 매일매일 한 장씩 소설을 썼어요. 그리고 그해 5월, 생전 처음 쓴 장편소설로 한 출판사의 신인작가상에 응모를 했습니다. 뭔가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여기자 언뜻 분주하고 화려해 보이는, 그래서 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욕망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와 두려워지던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렇게 수소문한 곳이 제주였어요. 대학시절, 가까웠다고 말하긴 어려운 한 선배의 집. 제가 어딘가 먼 데 머물 곳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이가 다른 친구를 통해 저에게 자기 집을 소개해 준 것이지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군대를 가 있어 어머니 혼자 계시다고 했어요. 연세에 비해 귀가 일찍부터 어두워지신, 통 트기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앞바다로 물일을 나가시곤 하던.

 

소설가 조경란 ㅣ 출처:경향DB

 

대문도 없는 낮은 돌담 집이었어요. 그렇게 저와 어머니는 그해 여름 함께 살게 되었지요. 어머니는 안방에, 저는 마당 한쪽 외딴 방에. 어느 날인가부터 어머니와 저는 매끼 밥도 함께 먹고 어머니가 잠드실 때까지 텔레비전도 보고 오일장에서 사온 찐빵도 쪄먹곤 했어요. 제 어머니와는 쑥스러워서 해보지 못한 일들이었어요. 사실 대화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긴 했어요. 어머니의 제주도 방언을 저는 못 알아들었고 어머니는 목소리 작은 제가 고함치듯 소리를 질러야만 말을 이해하셨으니까요.

 

소설 응모를 한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수상을 하게 되어 저로서는 첫 책의 교정을 봐야 했고, 아무래도 얼마간 서울에 다녀와야 하게 생겼어요. 안방 어머니 서랍에 들어 있던 제 옷가지들을 챙기고 있자 묵묵히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무사, 그건 두고 가라”고 하셨어요. 집에서 입고 있던 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들. 제가 곧 내려올 거라고 했으니까요. 책 나오는 것만 보고 곧 내려와 제 방, 앉은뱅이책상을 다시 쓸 거라고 약속드렸으니까요. 화순 어머니, 죄송합니다. 십칠 년 전의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네요. 제 옷은 아직 안방 서랍에 있나요? 화순리의 그 집은 여전히 거기 있나요? 어머니는, 어머니는 아직 살아 계신 거지요?

 

안덕면 화순리, 그 이후의 주소와 어머니 전화번호를 모두 잃어버렸어요. 이따금 어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시곤 하셨잖아요. 서로 싸우듯 마구 소리 지르는 것으로 보고 싶어요, 건강하시죠, 언제 오냐? 왜 안 오냐? 라는 말들이 다 전해지던. 제 전화번호는 그때 011에서 019로만 바뀌었을 뿐, 똑같아요. 화순 어머니. 다시 연락이 닿을 수 있을까요. 저 예전처럼 거기 가 있고 싶어요. 어머니와 매끼 절의 공양 같은 밥을 나눠 먹고 이따금 바다에 나가고 장을 보고 매일 밤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아침을 맞는 계절을 다시 보내고 싶어요. 단출하고 소박한 삶으로. 1998년 제주 화순리에서의 한 철은 지금껏 제가 보낸 가장 순정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세계의 끝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요. 혹시 이 편지를 보신다면 어머니, 십칠 년 전의 우리 약속은 아직 유효한 거라고 말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