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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4) 강희근 - 내 속에 사는 C 시인에게

강희근 | 시인

 

 

후배 C시인! 그간 뜸했어요. 들리는 말로는 지각을 흔드는 감동적인 시를 쓰느라 문을 닫아 걸었다는데 좋은 결실이 있기를 빕니다. 오늘 나는 이런 자리를 빌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씁니다. 나는 C시인도 관심을 보여주고 애정으로 조언을 해준 ‘제5회 이형기문학제’(진주시 주최, 6월1~3일)를 무사히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 행사의 특징 있는 프로그램으로 1박2일간 진행하는 ‘체험시 백일장’이 있지요. 내가 설명을 해주었을 때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맞장구를 치며 좋아해준 그 백일장 말입니다. 백일장이 갖는 즉흥성을 극복하기 위해 ‘체험 공간 지나가기’를 통해 사색의 기회를 넓혀 주자는 의도이지요. 그리고 이형기문학상은 연중무휴로 심사하는 과정을 거쳐 시상하는 것으로, 이도 계획된 대로 잘 집행되었고요.

 

사실 내가 행사 끝에 이런 자랑이나 늘어놓으려고 펜을 든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가슴속에 응어리져 어찌해볼 수 없는 마목과 같은 불만이랄까, 아쉬움이랄까, 하는 사정을 털어놓으려는 것이에요. 나는 아시다시피 서울 바깥에 있는 한 지역의 시인으로, 교수로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지역문학 운동의 한쪽 중심에 놓이게 되었지요. 그런 사람이 항용 접하게 되는 것이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 문화면의 편향된 보도였어요. 우리가 함께 확인해 보았던 편향이라는 것은 서울 문화 내지 문학에의 일방통행이라는 말이지요. 이번 ‘이형기문학제’ 기사도 통신사 기사 몇 줄이 거들어주었을 뿐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에는 한 줄도 비치지 않았어요. 나는 이런 대접이 한 생애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감정을 흔드는 요마 같은 것이 나의 심장으로 들어와 모서리를 깎는 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요마도 오랜 세월 움직인다는 것이 멋쩍어진 것이 아닐까요.

 

언제였던가, C시인이 내게 말해 주었지요.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들은 서울의 경계를 넘어 바깥 지역으로 들어와서 소정의 구독료를 받아가지만 정작 문화면의 경우 서울 쪽에만 봉사하고 마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그럴 때 “지역 너희는 지역의 신문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지역신문이 서울 발행의 신문들처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느냐고, 그래서 서울 발행의 신문은 구독료를 서울 바깥쪽 독자에게는 문화면 몫만큼은 떼고 받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속살거려 주었지요.

 

시인 강희근 ㅣ 출처:경향DB

기억하는지요? 내가 정년을 한 뒤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 한 부를 끊고는 참으로 시원한 감정에 젖어 시 ‘독립국’을 써서 보여주었던 것을! “나를 지배해온 건 9할이 신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그 신문 중의 하나를/ 끊었다// 내게 군림해온 6할의 권력을 물리쳤다/ 밥상에 오르는 김치/ 밥상에 오르는 시락국/ 그 하나를 물리쳤다// 나는 이제 신생 독립국가다! 풀잎 깃발/ 깃발 한 폭, / 게양대에 올린다”(시 ‘독립국’ 전문)

 

이 시를 읽어주었을 때 “제가 직접 쓴 것처럼 느껴져요”라 말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무렵 나는 강준만, 권성우의 공저 <문학권력>을 읽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통쾌하고 다른 한편으론 ‘지역문학’에 대한 앵글이 깊이 닿지 않아 답답했지요. 문언유착, 문단의 섹트주의, 문학 신비주의, 스타시스템, 비평 부재의 문제 등 우리 문학판에서 이루어지는 부정적인 측면들이 거의 다루어지고 있었지요. 다만 어떤 지역의 문학 활동을 거론하면서 ‘순수한 열정’이나 ‘문학 신비주의’ 기운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문학권력의 행사를 용이하게 해준다고 평가절하한 것이 내 눈에 걸렸어요. 물론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나 서울지역과 그 밖의 지역이 갖는 불균형 문제가 문학권력의 상·하층부 논의에 깔려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요.

 

이쯤 적고 나니 후배 시인 그대가 보고 싶어지는군요. 조만간 만나 차 한잔 나누기로 합시다. 그대 스스로 비평 부재의 시대에 비평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아울러 지역문학을 챙기기 위해서는 연구의 측면도 거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 등 할 이야기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이제 내 어깨에 놓인 것으로 여겨졌던 짐들도 친애하는 후배의 어깨에 넘겨주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만날 때까지 건필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