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6) 이주실 - 안녕, 똥가방

이주실 | 연극배우

 

 

 

며칠 전 넘말, 것절리 친구들이 상추를 싸들고 나한테 왔었어. 먹적골 그 집 밭에 가 상추 솎아내고 고추대 세우는 품앗이를 하고는 뒤란에 앉아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왔다더구먼. 친구들은 그대가 자꾸 오란다고 툴툴거리면서도 갈 곳 없는 나이에 불러주는 친구가 있으니 행복하다고 했어. 먼저 웃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좋은 친구라고 칭찬하더구먼.

 

17년 전이었어.

 

소사북국민학교 졸업 50주년 모임에서 시를 쓰는 농사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저어기… 기억할라나. 먹적골 똥가방이야” 했던 그대. 난 까맣게 잊었다가 그 소리에 알아차렸는데, “웬 루비이통 가방?” 하며 누군가 던진 말에도 그대는 맑은 웃음으로 답했지. 그 자리에서 그대는 “내가 공부는 영 담을 쌓아 ‘머리 속에 똥만 들었냐’는 말을 듣곤 했다. 2교시만 끝나면 꼭 도시락을 먹어 ‘저 애 가방은 책가방이 아니라 똥가방’이라고도 했다”며 분위기를 띄웠지. 그러곤 “칠삭둥이라 이름이 칠득이가 됐다는데 친구들이 칠뜨기팔뜨기구데기라 놀렸다”고 웃기는 바람에 그대 이름도 생각났고.

 

그래. 성명 김칠득보다 별명 똥가방으로 더 유명했지. 중학교도 다니다 만 무지랭이라고 자신을 낮추었지만 정서적으로 편안해 보였어. 많이 배워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친구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게 있었어. 그건 그대가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벗하면서 가슴까지 적시며 동화된 깊이일 거라 생각했지.

 

그 후 이따금 생각나더구먼.

 

 

연극배우 이주실 ㅣ 출처:경향DB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산바람 강바람’을 부르면서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잔심부름 하던 검정고무신의 소년. 몇 년 전 발발한 6·25전쟁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살게 된 친구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뭐라도 나눠 먹던 눈물 많은 코찔찌리 사내아이. 가난으로 몸살을 앓던 전쟁 직후라 체육시간이면 체육보다 낫으로 풀을 베어 퇴비 구덩이를 채워야 해 서투른 여자아이들이 헉헉 숨을 몰아쉴 때 거침없이 도와주던 예비 신사의 모습 등.

 

하지만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닐세. 5학년 겨울 일을 잊을 수가 없어. 나에겐 하나의 사건이었으니까. 그때 우린 각각 책임 점수가 있어 일정 점수에 미달하면 문제당 한 대씩 종아리를 맞았지. 일곱 달 만에 태어나 숨을 쉬지 않아 아버지가 죽은 줄 알고 차가운 윗목에 밀쳐놨는데 살아있었더라는 그대는 제외 대상이라 태평이었지. 하지만 학교 성적은 꼴등이어도 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물 대고 빼고, 김 매고, 소꼴을 뜯었던 그대는 농사일과 착한 마음씨만큼은 1등이었어.

 

어쨌든 그날은 산수 쪽지시험이라서 점수를 뒷자리 아이가 매겼는데 내 시험지 담당은 칠득이 그대였지. 우리는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답을 빨간 색연필로 O, X 표시를 하고 합산한 뒤 발표를 기다렸어. 그런데 최종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이 시험지 한 장을 팔랑팔랑 흔드시며 날 째려보시더니 앞으로 나오라는 손신호를 하셨지. 내가 바지를 걷어올리는 동안 회초리를 든 선생님은 “똥가방한테 부탁했니? 2점을 올려줬네. 매를 벌었다 얘. 네 대 맞고 변소 청소 한 달이다” 하셨어. 난 무슨 소린지 영문도 모르고 강도 높은 체벌을 받았지.

 

그 후 칠득이 얼굴만 봐도 몹시 쌀쌀맞게 굴었던 생각이 나. 내가 종아리 맞을 때 칠득이가 울더라는 얘기도 듣고, 변소 청소를 위해 한 시간 일찍 등교해야 하는 나보다 한 달 내내 먼저 와 깨끗이 청소해 준 것이 칠득이고 그것이 사과의 뜻이었음을 알았으면서도. 늦었지만 사과할게. 그때 고마웠어. 내가 책임 점수가 모자라 종아리 맞을 게 딱해 점수를 올려 줬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리고 아동기엔 칠득이의 이모저모 언행이 나에게 좋은 본보기였고 은연중에 많은 가르침이 되었음을 고백하네. 중년의 동창 모임에서 다시 본 그대에게서도 순간을 살고 배운 것만 알던 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배웠음도 고백하네.

 

요즘은 영어와 피아노를 배우며 신바람 나게 산다고 들었어. 이 나이에 그건 해서 뭐에 쓰느냐고들 하나 난 온몸에 푸릇푸릇한 힘이 전해지는 것 같아. 뼛속부터 농사꾼이라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다지만 사이사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기 삶을 가꾸고 창조하며 산 사람이라서 그럴까. 세상을 보는 눈이 닳지 않아 새록새록 새롭구먼. 그러니 내 인생의 종착역 바로 앞에서 그대가 떠오른 것이 우연은 아니네그려.

 

새로 시작한 공부가 행복한 여정이기 바라네.

 

안녕~ 똥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