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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1) 안정효 - 오랜 낚시친구 한광희에게

안정효 소설가

 

 


환갑을 채우지도 못하고 한광희 전무가 광탄농장에서 세상을 떠난 때가 2002년 1월이었으니까, 서로 얼굴을 못 본 지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군요. 그곳 하늘나라는 요즈음 얼마나 평화롭고 조용한지요? 내가 사는 이곳은 이렇게 시끄럽고 살벌하지만 말입니다.

 

난 작년 말에 구기터널 근처로 이사를 해서, 한 전무가 살던 평창동의 옛집과는 훨씬 거리가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녹번역 근처를 지나다니며 한 전무가 일하던 정비공장 자리에 들어선 소방서 옆 성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우리들이 낚시를 다니느라 자주 그곳에서 만나고는 하던 날들을 아쉬워하고는 합니다.

 

1987년 11월 우리 둘이서 추자도 푸랭이섬으로 갯바위 낚시를 하러 들어갔던 일이 생각나는지요? 우린 8일 동안 무인도에 들어가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정말로 마음 편히 낚시를 했어요. 기억하죠?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로 우린 하늘과 바다와 물과 태양과 감생이의 세상에서 참으로 즐거운 나날을 그곳에서 보냈으니까요.

 

한 전무가 지금까지 살았다면, 요즈음처럼 시끄러운 세상 꼴을 보지 않고 무인도로 들어가 두어 달 같이 낚시를 하며 지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소설가 안정효 ㅣ 출처:경향DB

우리 둘이서 푸랭이섬으로 낚시를 하러 갔을 때는 우리나라가 대통령 선거로 무척 시끄러웠지만, 우린 외딴 섬으로 들어가서, 이를 악물고 서로 싸우는 정치꾼 패거리들 꼬락서니를 보지 않으면서,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가요.

 

왜들 그런지 모르겠어요. 총선과 대선이 겹쳐서인지 금년에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와 욕설과 모함과 막말과 싸움질이 요란하여 참으로 살아가기가 괴로워요. 한 전무가 사는 천국에서는 선거 따위가 없으니 이런 꼴을 보지 않고도 마음 편히 살 수가 있겠지만요.

 

우리나라에서도 천당에서처럼 서투른 민주주의니 선거니 하는 번거로운 제도를 모두 없애버렸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임금님이 다스리는 옛날 나라가 되어, 혓바닥 대신 칼날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의 혐오스러운 독설과 이기적인 고함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면,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될까 싶어요.

 

왜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벌떼처럼 몰려다니며 정치에만 몰두하여, 서로 못 잡아먹어 저렇게들 야단인지 답답하군요. 밥도 안 먹고 일도 안 하고 상대편을 해치려는 생각에만 집착하고, 미워하는 짓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아서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내가 한 전무한테도 몇 번 말했었죠? 세상에서 사랑처럼 부질없는 짓도 없기는 하지만, 미움은 훨씬 더 부질없는 짓이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꾼들은 미워하는 행위만 전문으로 하도록 집단 훈련이라도 받은 패거리들 같아요.

 

나도 이제 나이가 70이 넘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기만 한데, 주변이 워낙 시끄럽고 살벌하여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운지 모르겠어요. 웃을 줄 모르고 암상이 잔뜩 난 얼굴로 노려보기만 하는 사람들, 다정하게 웃으며 말을 하지 않고 멱살잡이만 하는 사람들, 이런 정치 장사꾼들이 없는 나라에서 10년이나 살아온 한 전무가 부럽기까지 합니다.

 

황당한 종말론이 극성을 부리는 2012년이 벌써 허리춤을 지나려는데, 총선을 치른 잡음은 그칠 날이 없고, 그리고 머지않아 닥칠 대선 때문에 너도나도 속셈을 차리려고 탐욕스러운 작태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서 드러내고 야단들이죠. 정말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하루하루입니다.

 

그립고도 보고 싶은 한 전무.

 

지나치게 평화로운 천당에서 지내기가 너무 심심해지면, 우리 언제쯤 녹번성당 앞에서 만나 낚싯대 챙겨 들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외딴 무인도로 들어가요. 그리고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몇 달 동안 바다만 쳐다보고 살기로 해요.

 

북한산 기슭에서 안정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