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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33) 이순원 - 나의 별친구 예하님께

이순원 | 소설가



예하님.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햇수로 벌써 17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는 예하님이 서른 무렵, 그리고 제가 서른아홉 살 때, 아직 이 땅에 인터넷이 시작되기 전 PC통신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하님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대략 미루어 짐작하는 나이와 그것이 본명이 아닌 게 분명한 예하라는 닉네임뿐입니다. 돌아보면 그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로 ‘하쿠타케’라는 이름의 혜성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혜성 소식을 듣던 날 저는 어떤 책의 서문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북쪽 끝 스비스조드에 높이와 너비가 각각 1마일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인간의 시간으로 천 년에 한 번씩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날카롭게 부리를 다듬고 가는데, 그렇게 해서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 영원의 하루가 지나간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사람은 참 작지요. 그렇지만 저는 우리 인간의 인연과 사랑도 저런 불멸의 시간과도 같은 우주의 한 질서로 파악하고 그런 운명과 인연과 사랑의 연속성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의욕만 그럴 뿐 그러나 저는 천문학이나 혜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커녕 그것을 소설에 활용할 일반적 지식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예하님 당신을 알았습니다. 제가 먼저 다가갔는지, 아니면 혜성처럼 당신이 다가왔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때 이미 잊었습니다. 그 시절 PC통신이야말로 우주의 바다와도 같았습니다. 당신은 우주의 먼 별에 있는 친구와 교신하듯 몇 달 밤을 새워가며 PC통신으로 우주와 별과 천문에 관한 지식과 일화를 얘기해주었습니다. 제 소설 ‘은비령’에 쓰여 있는 별과 우주와 천문에 관한 짧은 지식들이 모두 그때 예하님께 듣고 배운 것입니다. 


그 작품으로 어떤 문학상을 받게 되었을 때 수상소감에 예하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그런 기회가 있었지만 당신은 비껴지나가는 혜성처럼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났습니다. 


며칠 전 파란닷컴에 접속했다가 파란닷컴 서비스가 2012년 7월31일 24시에 종료한다는 안내창을 보았습니다. 파란닷컴이 바로 우리가 만났던 PC통신 HITEL을 이어받은 것인데, 제가 예하님을 만나 ‘은비령’에 도움을 받았던 것도 이제 PC통신 추억 저편으로 사라지는구나 싶은 묘한 기분 속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을 참 오래 생각했습니다.


소설가 이순원(출처 : 경향 DB)


예하님.


강원도 인제군에 가면 이제는 소설 속의 지명이 아니라 실제 ‘은비령’이라는 마을도 있고 고갯길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가 예하님의 도움을 받아서 쓴 소설 ‘은비령’이 나온 다음 소설 속의 고개이름과 마을이름이 그곳을 찾는 독자들과 마을주민들에 의해 실제 지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하면 그곳 은비령으로 갑니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가서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흰 뼛가루로 뿌려져 그곳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쿠타케 혜성처럼 한번 떠난 다음 영원히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예하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은비령으로 아주 떠난 다음 혹 설악을 찾거나 한계령을 찾는 길에 은비령을 지날 일 있으면 예전 PC통신 시절 우리가 별과 우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방제 그대로 ‘어느 별에서의 들꽃통신’처럼 제 이름 한번 불러주고 그 고개 은비령을 지나가길 바랍니다.


예하님이 부르면 제가 그곳의 나무로 바람으로 꽃으로 잎으로 손을 흔들어 나 여기 있다고, 여기서 당신을 기다렸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그 길을 지나며 제 이름을 부른다면 그때는 하늘에 흐르는 유성처럼, 혹은 당신이 설명해주었던 살별처럼 소리 없는 빛으로 당신 가슴에 제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당신은 늘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