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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32) 이명랑 - 저녁 여섯시경의 그녀에게

이명랑 | 소설가



그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갈 집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고, 얇은 겉옷과 닳아빠진 양말 사이로 악착같이 헤집고 들어와 기어이 상처를 내고 마는 겨울을 이 악물고 버텨보던 그녀는 저녁 여섯시 무렵이면 그렇게 되곤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무너져 내리고 싶었지요.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교정 한쪽에 줄지어 서 있던 학우들, 발을 동동 구르거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그들은 어쨌거나 모두 돌아갈 곳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들과는 사정이 달랐고, 재빨리 등을 돌려 한 그릇의 저녁밥을 향해 내달리곤 했습니다. 그 풍경 속의 그녀는 배고픔이었을까요? 



소설가 이명랑 (출처 : 경향DB)



그랬습니다. 차도 옆 인도 위에 플라스틱 바구니 몇 개를 늘어놓고, 그녀는 스물아홉의 저녁 여섯시경의 풍경 속으로 스무 살 무렵의 저녁 여섯시를 불러들이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나라는 인간은 구제불능이군. 또 감상적이 되어버렸잖아?’ 


그녀는 서둘러 빈 바구니들을 채웠습니다. 이제 곧 퇴근하는 사람들이 바구니 앞에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과일 값을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밤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사방은 너무 밝았고, 낮이라고 하기에는 태양에게 미안할 것 같은 저녁 여섯시경만 되면 그녀는 그랬습니다. 11월이나 12월에는 더 그랬지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살다 보면 과연 좋은 시절이 오기는 올 것인가? 


행복한 순간은 왜 이리도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인가? 


쓸모없는 질문들이 자꾸 그녀 가슴의 빈 바구니를 채우곤 했습니다. 차도 옆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주욱 늘어놓고 오늘치의 과일을 팔아야 오늘치의 양식을 마련할 수 있는 그녀에게 삶의 근원을 묻는 질문이나 올바른 삶의 가치에 가 닿는 질문들은 도려내야할 상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꼭 그런 날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체감하는 추위가 살을 도려낼 것만 같은 날, 어린 시절의 아랫목으로 돌아가 따뜻한 담요를 덮고 누워 만화책을 뒤적이거나 TV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은 날, 그런 작은 소망은 꼭 저녁 여섯시경의 어스름과 함께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녀는 저녁의 어스름에 그토록이나 예민했습니다.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했던 굶주림의 습관이 그녀를 놔주지 않았던 탓이지요. 점심을 굶고, 저녁을 굶고, 아침이 되어 그녀에게 허락된 단 한 끼의 식사인 아침밥을 먹기 전까지 그녀가 버텨내야 하는 밤! 저녁 여섯시경의 어스름은 그녀에게는 그 무서운 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지요. 


이제 그녀는 스물 아홉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무서운 밤을 이겨냈고, 이제 굶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도 옆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늘어놓고 앉아 있는 그녀는 여전히 저녁 여섯시경의 어스름이 무서웠습니다. 그녀는 차도 옆에 앉아 그녀 앞을 휙휙 스쳐 지나가버리는 차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녀의 생(生)은 늘 그녀만을 남겨두고 달려가 버렸습니다. 그녀만 혼자 남아 같은 자리에서 맴돌며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지요. 어쩌면 그것만이 그녀 인생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저녁 여섯시의 어스름을 향해 나직이 속삭이곤 했습니다. 


내게 등 돌리고 앉아 사라져가는 사람들과 사라진 사람들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는 그녀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봅니다. 


“명랑아!”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서둘러 이 편지를 끝맺어야겠어요. 어느 새 저녁 여섯시가 되어가니까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 서둘러 퇴근준비를 하는 시간, 나는 이곳에서의 나의 마지막 날에 스물 아홉의 나를,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 그녀를 만나면, 이 편지를 내 손으로 직접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잘했어! 잘했어! 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