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41-1) 마광수 - 그리운 H에게

마광수 | 연세대 교수



이렇게 너에게 편지로나마 용서와 재회를 간청해본다. 나이를 먹다보니 시간이 하도 빨리 흘러가서, 너와 만났던 것이 몇 년전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3,4년 전쯤 되는 듯 싶다.


너를 알게 된 것은 네가 독자로서 나에게 이 메일을 보내서였다. 내가 맨날 글에다가 칭얼거리며 보채대는 나의 페티시(Fetish·성적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물)인 ‘긴 손톱’을 네가 한번 네일아트 숍에 가서 가장 긴 걸로 붙인 다음 내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게 웬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그래줬으면 고맙겠다고 대답하고, 모조손톱 붙이는 비용을 내가 치러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너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날, 나는 네가 붙이고 온 모조손톱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길어 그만 홀라당 감격해버리고 말았다. 손톱의 길이가 대략 12센티미터나 되었으니 내 어찌 감격 안 할 수가 있으랴.


 

마광수 _ 연세대 교수(출처: 경향DB)



그래서 나는 너와 별 군말 없이 당장 모텔로 직행했고, 내 평생 가장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페팅의 시간을 가졌다. 네가 말수가 적은 여자라서 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고, 남녀간의 사랑에는 역시 ‘썰’이 전혀 필요없다는 것과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육체 언어’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너와 나는 나이 차이가 엄청 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의 나이차이를 별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이나 네가 나의 과격한 육체언어를 존중해주고, 요즘 시건방진 젊은 여자애들처럼 나를 늙었다고 깔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모텔방에서 우리는 정해진 시간을 돈 주고 연장해가며 별의별 헤비 페팅을 즐겼다. 나는 원래 사디스트 취향이었는데 네가 아주 세련된 마조히스트 취향으로 대응해줘서, 오랫동안 성적(性的) 기아증(症)에 시달렸던 내 육체는 오랫만에 실컷 맛있는 포식을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너를 만나기 이전에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해보았다. 그런데 ‘S·M 취향의 궁합’에서 너처럼 나와 죽이 잘 맞는 여자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마치 보물을 건진 듯한 기분이었다. 


모텔 방 안에서 더 뭉그적거리며 놀고 싶었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너무 기력을 소진해버리면 안 될 것 같고, 또 배도 출출해오는 지라 우리는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듯 모텔방을 나왔다. 그리고 근처의 번화가로 가서 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너의 길디긴 손톱을 보고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이 나는 보기에 썩 유쾌하였다. 


그렇게 헤어진 다음부터 우리는 거의 하루 걸러 만났다. 처음에 커피숍 같은데서 만났다가 모텔로 가는 것도 귀찮아져서, 처음에 갔던 모텔을 단골로 정해놓고 아무나 먼저 도착한 사람이 전화로 룸의 넘버를 알려주는 식이었다. 만날 수록 우리의 페팅은 강도를 더해가서, 한국에서 파는 조악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섹스 토이를 각자 구해가지고 와서 만나기도 하였다. 


내가 너에게 무엇보다도 고마웠던 것은, 네가 나의 ‘정력’을 밝히지 않고 ‘정열’만을 밝혀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나이로 보아도 그렇고, 오랫동안 우울증 치료제를 먹은 관계로 정력이 세지 못했다. 그래서 은근히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너는 내게 행여 ‘비아그라’라도 복용하고 올 필요가 없다면서, 늙어빠진 나를 따사롭게 포용해줬던 것이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이 6개월 가량 지나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내쪽에서 그만 이별을 통고하게 되는 해프닝이 뜬금없이 닥쳐왔다. 절대로 네게 싫증을 느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 집안문제 때문이었다. 창피하게도 나는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평생을 지내온 전형적인 ‘마마 보이’였는데, 낌새를 챈 모친이 우리의 만남을 극구 반대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H, 부디 나를 너그럽게 용서해다오. 그리고 제발 나와 한번만 다시 만나다오. 그러면 나는 정말 주체성 있게 너와의 긴 사랑의 만남을 이끌어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