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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43) 김주영 - 티베트 라마가 돼 있을 나에게

김주영 | 소설가



그를 만난 것은 벌써 12년 전의 일이었다. 하필이면 우기인 6월 하순에 히말라야 산록 아래의 티베트 여행을 떠나다니…, 여행 도중 필경 궂은 날씨 때문에 곤욕을 치르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일자를 6월 하순으로 잡은 것은 일곱명을 헤아리는 동반자 중에 두 사람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티벳 승려들 (출처 :경향DB)



그날 우리 일행은 세계의 오지로 일컫는 티베트의 오지를 가로질러 중국 국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티베트의 시가체에서 장체로 가는 길이었다. 18인승의 작고 낡은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허둥지둥 기어가고 있었다. 척박한 농경지를 가로지른 도로에는 진눈깨비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버스가 돌출해 있는 돌부리에 걸려 갸우뚱거릴 때마다 차체의 쇳조각들이 긁히는 소리와 가만두어도 사시나무 떨 듯한 차창들은 요란하게 흔들리며 찢어지듯 울부짖었다. 허술하게 조립한 차체의 크고 작은 틈바구니마다 뼛속을 호비칼로 도려내는 듯한 한기와 진흙 먼지가 새어들었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운전기사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 일행 일곱명은 한결같이 눈을 감은 채 쇠골 깊숙이 턱을 묻고 이 고단하고 짜증스러운 버스의 행로가 끝나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버스는 좀처럼 덜컹거림을 멈추지 않았고, 출발 당시부터 내리던 진눈깨비도 멈출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문명의 이기라는 것을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원시적인 고통을 이를 악물다시피 겪고 어느 순간 우리들의 덜컹거림이 멈추었다. 버스가 정차한 것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줄곧 조마조마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뒤쪽 타이어 하나에 펑크가 난 것이었다. 진눈깨비가 몰아치는 무인지경 한가운데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오지이기 때문에 지나가는 차량조차 만날 수 없는 곳에 펑크 난 고물 버스가 멈추어 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내려서 참고 참았던 배설을 할 수 있고, 몸을 추슬러 어긋난 뼈대들을 제자리에 박아 넣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역시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인기척이라곤 없는 메마르고 스산하기 짝이 없는 들판에 시야가 흐려지도록 눈비가 쏟아졌다. 


‘이건 미친 짓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미련하게도 그 많은 여행경비를 들여 하필이면, 헐벗은 산등성이와 야크 똥밖에 보이지 않는 이런 오지 한가운데서 똥개 떨 듯하고 있단 말인가. 남들이 우리 일행을 보면 얼마나 혀를 차겠으며 측은해서 비웃을까. 다시 버스에 올라 웅크리고 앉아 그런 비애를 씹고 있는 사이에 놀랍게도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눈발 사이로 버스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차창에 매달려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손으로 무언가를 손에 쥐여 주기를 간곡하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차창에 매달리는 그 아이들 중에서 나는 적어도 50년 전에 헤어졌던 그를 만났다. 


너무나 오래 입어서 너덜너덜 해진 옷소매, 뒤축이 닳아 없어진 검은 고무신, 까치가 둥지를 틀어도 될 것 같은 더부룩한 머리는 필경 이발소 구경한 지가 까마득한 옛날일 것이었다. 얼굴은 씻은 지 오래, 두 눈만 빠끔하고 웃을 때 이빨만 하얗게 드러날 뿐 몸뚱이 어디에도 도무지 깨끗하게 세척된 곳이라곤 없는 아이, 분명 50년 전에 내가 만난 것이 틀림없는 이 아이의 이름이 뭐였더라? 


머릿속에 가물가물 떠오르는 그 이름이 금방 혀에 감길 것 같으면서도 가물가물 사라진다. 이 아이는 하필이면 왜 나 혼자만을 향해 집중 공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방을 뒤져 노트 두 권을 꺼내 흔들어 보이며 멀리 개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아이는 얼굴 가득하게 웃으며 개울로 달려갔다. 유독 그 아이만 맨발이었다는 것을 그때야 발견했다. 물을 끼얹는 시늉만 하고 쏜살같이 되돌아온 아이의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가슴이 뜨끔하도록 놀랐다. 그 아이는 바로 50년 전의 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에게서 볼펜과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눈비에 젖을세라, 윗도리 속에 넣었다. 우리와 동행했던 안내자가 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사원에 있는 라마 스님에게 갖다 드리려고 젖지 않도록 간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