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45) 김홍신 - 하늘이 그대를 탐낸 것이라오

김홍신 | 소설가·건국대 석좌교수




삶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오. 인생은 신묘하게도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때론 행복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매혹적인 것은 죽음 때문이라오.


좀 더 나와 함께 살았으면 오히려 오욕칠정을 다 삭히지 못해 심사가 곤궁했을 텐데, 멀쩡한 날보다 아픈 세월이 너무 길었던 당신의 힘겨운 모습을 차마 더 볼 수 없어 하늘에서 얼른 데려간 것이라 생각하오.


 

강연하고 있는 소설가 김홍신 씨 (출처: 경향DB)



사람은 하루에 2만2000번쯤 숨을 쉬고 10만번쯤 심장이 뛰는데 그대는 병약한 탓에 숨도 가쁘게 쉬고 심장도 가쁘게 뛰었으니 그 얼마나 많은 순간 힘겹게 살았는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오.


‘인생은 잘 놀다가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내가 그대와 잘 놀지 못한 잘못이 어찌 작으리오만, 그대는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고 하늘 어딘가에 별이 되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겠지요. 나도 언젠가는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그대처럼 별이 될 것이오.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어주기 위해 살았을 적에 아팠던 건 죄다 잊고 기뻤던 것만 추억하며 웃어주오. 


이렇게라도 그대의 길지 않은 삶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변명하는 건 위로하고 다독거릴 말이 세상에 달리 없기 때문이오. 사람이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적어도 60년이 걸린다고 했소. 할 말 다 못하는 까닭은 바로 그 침묵임을 그대는 알리라.


인간사에 최고의 진통제는 사랑이라 했거늘, 뭐가 그리도 아까워 그대에게 사랑조차 야박하고 겉치레로 했는지 모르겠소. 참으로 하기 쉬운 변명,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니까 믿거라 하고 그랬다는 말조차 이젠 할 수가 없구려.


너무 오래 병마와 씨름하느라 살림이며 애들과 남편 뒷바라지를 못하는 걸 자탄하다가 내 친구들에게 “예쁜 여자 있으면 애 아빠와 재미있게 놀게 해 달라”고 했겠는가.


“내가 죽으면 제발 건강하고 바라지 잘하는 여자를 만나서 재미나게 살라”고 했던 그대의 말은 함축된 간절함과 애틋함이었소.


어렸을 때 천식을 앓은 뒤 병약한데다 하필이면 나를 만나 병마가 더욱 기승을 부린 거라 생각하오. 장편소설 <인간시장>이 한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되어 1980년대의 전설이라는 영광을 누렸지만 바른 소리 쓴소리 많이 한 탓에 우여곡절이 따르고 영욕이 교차했기에 온갖 협박, 공갈, 위협에 그대도 고스란히 노출되어 심장발작에 시달렸소. 여자가 차마 들을 수 없는 괴이쩍은 협박까지는 잘도 견뎠지만 우리 아이들을 유괴하여 죽이겠다는 협박은 그대의 심장이 터지도록 몰아붙였소. 아이들 데리고 도망치기 몇 번이며 통곡하고 애걸하듯, 차라리 이혼하여 아이들만이라도 살리자고 애절하게 울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오.


후생이 있어 다시 태어난다면 딸아이가 그대의 시신을 끌어안고 마지막으로 한 말을 나도 그대로 하고 싶소.


“그대여, 이다음 생에는 절대 아프지 마시오.”


붓다께서도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셨소. 그렇거니 사람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한 번은 가는 길이오. 10년을 사나 100년을 사나 시차가 있을 뿐 사람은 이 세상의 나그네가 아니겠소. 그러니 서러워하지 마오. 죽음은 참 서러운 것이지만 늙는 것도 몹시 서러운 것이오. 그대는 늙기 전에 고운 나이로 오롯이 조금 먼저 갔을 뿐이오.


온 우주가 사라졌다가 지금과 똑같이 다시 생기는 걸 대겁이라 하오. 설마 대겁의 세월 동안 우리 어찌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지 않으리오.


살아생전 그대가 그리도 부러워하던, 우리 집 마당 소나무에서 마음 놓고 날아다니던 새들은 여전히, 모이 주던 그대를 부르는지 지저귀고 있소.


이제 애들 걱정은 내려놓구려. 아들 녀석은 군복무를 마치고 참하고 예쁜 아이 만나 결혼하고 좋은 직장에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소. 딸아이는 원하던 대로 뉴욕의 패션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맨해튼에서 구두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소. 꿈길에 한 번쯤 아이들을 꼬옥 안아주고 가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