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44) 김선재 - 처음이라는 마지막에게

김선재 | 시인



아무도 몰래 떠난 여행이었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지만 내 안으로 온전히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빨랫줄에 누군가 널어놓은 홑청 사이로 몸을 숨기듯, 장롱 안의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두듯, 나는 잠시라도 숨죽일 곳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현듯 어떤 지명을 떠올렸다. 선명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어떤 곳. 내가 태어난 곳이었다.


원고들이 책으로 묶이는 동안 나는 알고 있던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는데, 그것은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약력의 첫 줄에 관한 것이었다. 의미 없는 기록이었지만 결코 바뀔 수 없는 기록이기도 했다. 태어난 곳, 그러나 오래 잊고 지내던 곳, 고향이라고 불리는 곳. 그 고향이라는 단어는 이 대지에서 인간이 첫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부여받게 되는 굴레이자 운명일지도 몰랐다.



시인 김선재 (출처: 경향DB)



고백하자면, 일말의 감상적인 기운에 작정한 여행이었다. ‘첫’이라는 단어가 가진 판타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첫 시집이 출간된 즈음이었고 첫 귀향이었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행선 도로 위에서 만난 구름들이 갈수록 낮고 두꺼워지는 걸 보면서 이유도 없이 마음도 따라 무거워졌다. 딱히 뭔가를 보거나 하기 위해 작정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왜? 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마치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물고기처럼, 알을 낳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 물고기처럼 나는 또 뭔가를 잃어버리고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건 하던 일을 작파하고 뒤늦게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늘 시달렸지만 애써 외면하던 불안이기도 했다.


내 약력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너에게서는 바다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유년의 한 부분을 그곳에 묻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느 날 가까운 누군가가 바다로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공포를. 그것은 오랫동안 입에 올릴 수 없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바닷물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바다 가까이 갈수록 시퍼런 물빛의 유혹이 강해진다는 것을. 가족은 어떤 이름을 잃고 나서 고향을 떠났고 그 사실은 내 가계의 암묵적인 비밀이었다. 나는 그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그토록 먼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섬으로 통하는 배는 모두 묶였고 작은 도시는 밤새 소란스러웠다. 먼바다에서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왔고 거친 물결이 해안을 흔들었다. 상황은 다음날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외지인들이 모르는 산복도로를 찾아보거나 해풍에 빛이 바랜 골목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이끼처럼 축축했고 바다에서 밀려온 안개로 자욱했다. 걷는 동안 나는 오랫동안 입 밖에 꺼낸 적 없는 가계를 차례로 더듬어 보았다. 바다 때문에 잃어버린 혈육들의 이름이었다. 그로 인해 운명이 결정되고 흩어져 남처럼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안개 속에서 섬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내게 고향이란 잊어버렸던 이름들에 관한 잃어버린 기억을 확인하는 곳인 것도 같았다. 무엇으로도 그 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를 불편하게 하던 사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담벼락처럼 나를 지탱하던 어떤 시원(始原)이기도 했다. 그것이 내 실감의 세계였고 내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잃어버리지 않고는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걸, 나는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다시는 고향이라는 이름으로는 되돌아가지 못할 곳이었다.


어느 여름 나는 태풍이 지나간 그 담벼락에 흔적을 남기고 다시 돌아간다. 2012. 8. 다녀감.


추신: 인생에서, 처음은 언제나 처음이라는 마지막임을 이제는 안다. 동행해준 내 그림자에게 인사를 전한다.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