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노중훈의 짝사랑]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부근의 금천교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맛집이 몰려 있다는 소문이 서촌의 재발견과 맞물리면서 몇 년 전부터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시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작업실을 둔 나도 한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을 출입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시장 곳곳에 옹그리고 있다. 잘나가는 시장의 모습은 흐뭇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시장을 지켜온 노포들이 훌쩍 뛴 집세, 프랜차이즈의 공세 등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둘씩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아담집’이 문을 닫았다. 식당 이름처럼 아담하고 고운 할머니 혼자서 37년간 운영한 작은 백반집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기력이 예전만 못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문 닫기 며칠 전 아담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데, 속이 좀 뜨거워졌다. 동시에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오래된 식당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올랐다.

 

 

전북 진안의 ‘왕대포’에도 할머니 혼자 계신다. 무려 44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찾아온 이들에게 배고프면 밥 내어주고, 술 고프면 안주를 내어준다. 타일로 마감한 식탁을 갖춘 왕대포의 안주는 별다를 게 없다. 부침개나 두부가 고작이다. 맛도 별다를 게 없다. 당신 드시던 대로 간을 하고, 당신 드시는 밑반찬들을 툭툭 올려준다. 3000원짜리 막걸리 한 병을 시켜도 계속 뭔가를 챙겨주려고 한다. 과분한 인심이다.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연신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이내 불콰해진다. 날이 서 있는 마음도 바닷가 몽돌마냥 동글동글해진다. 글자로 포획되지 않는 대폿집 분위기는 직접 와서 느껴보는 수밖에 없다.

 

2013년 늦봄, 서울 제기동에 위치한 ‘홍릉각’과의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 보면 그저 그런 동네 중국집이 분명했지만 당시 72살의 할아버지 주방장이 발휘하는 요리 공력에 감탄사를 연발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강호의 고수가 초야에 은둔해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잡채밥, 삼선짬뽕, 짜장면, 라조육 등을 먹어봤는데 ‘아, 중국집 음식이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맛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중화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아서인지 볶음 요리들을 연달아 해치우고 나서도 입안이 마르거나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굴소스를 넣지 않은 ‘옛날식’ 잡채밥은 고상한 맛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맵지 않지만 얇은 튀김옷과 촉촉한 돼지고기가 빈틈없는 앙상블을 이루는 라조육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했다. 건해산물이 풍성하게 들어간 삼선짬뽕의 국물 또한 중후하다기보다 상쾌한 쪽에 가까웠다.

 

그때도 노(老)주방장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고, 많은 손님 치르는 것을 힘겨워했다. 몇 년 사이 단골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할아버지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자연히 영업시간은 짧아졌고, 칭송이 자자한 정탁 요리(1인당 얼마의 금액을 내고 맛보는 예약 코스 요리)도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식사 메뉴는 부인이 대신 웍을 잡고 내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할아버지를 주방에서 놓아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입이 즐거운 것보다 당신의 건강이 우선이다. 미리 고개 숙여, 허리 굽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