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임의진의 시골편지]사과처럼 아름다운 별

 

붉은 사과를 보면 누군가에게 먼저 ‘사과 말씀’을 올리고 싶다. 얼굴을 붉힌 일들을 뉘우친다. 푸른 청사과를 보면 젊어서 설쳤던 일들을 또 사과하고 싶다. 촐싹대며 살다가 잘못한 일이 많지. 사과를 보면 쪼개서 나눠 먹을 걸, 나누지 못한 욕심들도 자꾸 목에 걸린다.

 

여름은 사과가 익는 계절. 사과꽃이 핀 게 엊그제만 같은데 흠뻑 비에 젖고도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 꽃을 선물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누가 가장 행복할까. 정답은 엉뚱하게도 꽃을 판 꽃집 주인. 사과밭에서도 그럴까. 태풍 피해 없이 사과를 출하한 뒤 유쾌하게 웃는 이는 혼자뿐일까. 궤짝에 담긴 잘 익은 사과를 보면 누구라도 겁도 없이 사갖고 싶어. 금괴도 아니고 뭐 까짓 것. 누이들과 사과를 한 개씩 집어 들고 여름밤 대자리에 둘러앉던 기억. 모두들 부자가 된 기분이었지.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가수 이용의 노래 ‘서울’도 자주 불렀던 레퍼토리. 도심 복판에 사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구경하는 시민들. 어디메 가로수로 심은 사과나무가 풍작이라는 뉴스를 보곤 했었다. 사과처럼 아름다운 별에 살면서 우리 인생도 사과처럼 잘 익어가기를.

 

“이곳엔 사과가 놓여 있었지. 이곳엔 식탁이 서 있었어. 저것은 집이었고, 저것은 도시였어. 저기 있는 이 사과가 지구란다. 참 아름다운 별. 그곳엔 사과가 있었고, 사과를 먹는 사람들이 살았었지.” 독일의 시인 한스 엔첸스베르거의 시 제목은 ‘사과처럼 아름다운 별’. 우리는 사과나무가 있는 별에서 사과를 먹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사과를 먹으려면 그린벨트 녹지가 꼭 필요하고, 사과밭엔 ‘모두의 행복’이 같이 열린다.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