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명란과 식민의 역사

어린 시절에 내가 살던 서울 한 동네에서는 부잣집 밥상의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우선 밥이다. 하얀 쌀밥, ‘아키바레(추청)’ 품종의 일반미로 지은 윤기 도는 밥이 나왔다. 통일이나 유신벼(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름도 대단하다 싶다) 밥을 먹는 집이 대다수였으니, 아키바레 밥은 부잣집의 필수요소였다. 다음으로는 김이다. 윤기 흐르는 김구이나 생김이 겨울에 늘 밥상에 놓이면 역시 부자의 상징이었다. 소고기 장조림도 그랬다. 한번은 충격적인 음식을 먹었다. 비릿하면서 달콤하고 짭짤한, 발그레한 어란이었다. 바로 명란. 지금도 비싸지만 당시도 부자가 아니면 밥상에 자주 올릴 수 없었다. 뜨거운 일반미 밥 한 술에 명란을 척 올려서 입에 넣었을 때의 감촉을 잊을 수 없다. 부잣집 아들 내 친구는 아예 명란을 잘게 자른 까만 김과 함께 뜨거운 밥에 썩썩 비벼서 먹었다. 천국의 맛이었으리라.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간혹 명란을 산다. 입맛 없을 때 물 말아 곁들여도 좋고, 옛 추억의 ‘부잣집 밥상’을 기억하면서 뜨거운 밥에 얹어 먹어도 본다. 알이란 본디 생명의 최초 단계에 속한다. 알이 부화해 대를 잇는 우주의 법칙을 유지한다. 우리가 너무 많이 명란을 먹어버려 명태 개체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명란의 유혹적인 맛과 명란 먹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말을 듣는다. 험악한 파도로 유명한 북해어장에서 우리 원양어선들이 노리는 것이 주로 이 명란이다. 명란 값이 좋으니, 명태보다 알을 얻기 위해 어로를 한다고도 한다.




일본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20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다. 이 도시의 명품 중에 명란이 있다. 공항과 기차역에서 대표적인 향토 식품으로 내놓고 판다. 명란을 그냥 전통적인 형태로만 팔지 않는다. 튜브에 넣어서 간단히 먹을 수 있게 가공한 것도 있다. 일본 특유의 ‘혼밥’ 문화에 잘 맞는 상품이라고 한다. 밥 짓고 튜브를 열어 쭉 짜넣어 먹거나, 빵에 발라 먹는다. 명란으로 만든 스파게티도 있고, 명란을 넣은 바게트도 유명하다. 한국인도 어떻게 알았는지 명란 바게트를 사러 후쿠오카 외곽에 있는 빵집에 들른다. 버터와 바게트라는 서구의 상징에 명란을 끼워 넣은 일본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정신의 전통이랄까.

후쿠오카 명란에는 한·일 간의 근대사가 스며 있다. 강점기에 부산에서 살던 후쿠오카 사람이 귀국 후 부산서 먹던 명란의 맛을 재현한 것이 오늘날 ‘후쿠오카 카라시 멘타이코(매운 명란)’의 원조가 됐다고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일본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음식이야 문화의 중요한 내용물이니 교류를 통해서 늘 주고받게 마련이다. 아쉬운 건 이런 음식 교류사는 늘 우리가 손해보는 정치적 역사와 결부돼 있다는 점이다.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경영이 곧 후쿠오카 명란의 토대가 됐으니. 임오군란의 결과 청나라와 맺은 불평등조약으로 인해 조선에 전해진 짜장면이나 미군과 미국 문화의 첨병으로 들어온 햄버거의 역사처럼 말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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