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해썹’, 누구 좋으라고

예전 정권에서 이른바 여론 환기용으로 많이 쓰는 수법이 바로 불량식품 때려잡기였다. 학교 앞 떡볶이 좌판과 심야 포장마차들이 단속반에 걸려 벌금 맞고 ‘구루마’를 압수당하기 일쑤였다. 농약 콩나물이니 석회 두부니 하는 언론의 과장 때문에 군소 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시민의 불안 심리를 절묘하게 이용해서 민심을 조절하곤 했다. 그것은 요 근래 정권에서도 다르지 않다. 대표적 불량식품 추방 대상에 떡볶이를 넣고는, 반대로 한식세계화 첨병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막대한 지원금까지 줘가면서 말이다.

해썹(HACCP)이 말썽이다. 관계자 말고는 잘 모르던 이 말이 떡볶이 좌판 아줌마에게는 생존의 언어가 될 모양이다. 정부에서 2017년까지 순대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도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식품위생법 입법예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썹 인증이란 식품 생산부터 제조, 소비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위생 관리 체계다. 늘 불안하던 차에 잘됐다는 사람도 있다. 맞다.

국가가 나서서 음식 걱정 없이 해준다는 데 반대할 이가 없다. 문제는 이런 식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이들이 대개 영세한 우리 이웃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돈이 없다. 해썹을 받으려면 막대한 시설투자를 해야 하고 시설 관리 비용도 든다. 그걸 국가가 해주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알아서 하자니, 사설 컨설팅 업체를 써야 한다.




당장 인터넷에 ‘해썹’을 쳐보시라. 검색결과 맨 위에는 포털에 돈을 지불하는 온갖 사설 업체가 등장한다.

해썹은 만병통치약인가. 설사 그 기준이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소규모 영세 업체나 식당까지 갖춰야 할 만큼 위대한(?) 개념인가. 해썹은 원래 NASA(미항공우주국)의 요청으로 1959년에 필스버리사가 우주식에 적용하기 위해 시작한 시스템이다. 무중력인 곳에서 무균상태로 음식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썹 말고는 우리 음식의 위생을 담보할 방법이 없는가. 우리가 국가에 내는 온갖 세금은 떡볶이 순대 리어카가 위생을 유지할 수 있는 데 쓰일 수 없는 것일까. 그저 해썹을 하시오, 라고 법률을 만들고 단속을 하면 그만일까. 극단적으로 떡볶이와 순대의 예를 들었지만, 일반 개인 식당도 모두 이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면 오르는 밥값은 누가 대신 내주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 해썹이 당장 우리 식품과 외식시장에서 필수적인 것일까. 많은 이들이 되묻고 있다.

이 정부는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등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근절을 공언했다. 그 대책 중의 하나가 영세업자들 허리가 휠 해썹 인증제도라니 기가 턱 막힐 뿐이다. 시민은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 정부는 그것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가 겨우 해썹 필수는 아닐 것이다. “저희 리어카는 해썹 인증된 떡볶이와 순대를 판매합니다”라는 마크가 붙은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이건 코미디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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