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봄나물

강원도 평창 가리왕산에 다녀왔다. 어떤 때는 5월에도 눈이 온다는 깊은 산중인데,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올림픽 스키 슬로프를 만든다고 대규모 공사가 벌어져 앓고 있는 산이다. 안 그래도 오가는 고속도로를 넓히는지 중간 중간 막혔다.

요즘은 화전(火田)이 금지되어 있지만 산에도 농민이 있다. 특용작물 중심의 농사를 짓는다. 아루농장이라는 젊은 농부의 밭이 거기 있었다. 밭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적절치 않다. 산비탈에 그저 씨 뿌리고 퇴비나 주는 게 전부다. 화학비료를 주면 오히려 뿌리가 썩는 나물도 있어서 자연농법 중심으로 많이 기른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산나물도 이 비탈에서 재배된다. 능개승마, 지장가리(풀솜대) 같은 것들이다.

어린 싹을 먹기에는 지금이 딱 좋은 철이라고 한다. 명이나물도 기른다. 춘궁기에 사람들 명을 이어준다고 하여 명이라고 부른단다. 원래 산에 구황식물이 꽤 많은데, 널리 알려진 곤드레나물과 지장가리, 명이는 질량이 꽤 있어서 배가 부르다. 적은 곡식과 함께 요리해서 배고픔을 달래기에 아주 적격인 나물이다.

명이는 원래 지역에서나 알고 먹던 것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에는 울릉도와 배편이 연결되는 포항의 죽도시장에서 보곤 했다. 간장에 절인 장아찌가 삼겹살과 곁들여 먹기 좋다고 해서 많은 고깃집에서 나물 장아찌를 내곤 한다. 중국산이 많아서 아쉽지만 과연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아루농장의 주인 정해수씨는 두 가지 명이나물을 기른다. 울릉도종과 오대산종이다. 울릉도종은 잎이 넓고 주름이 깊으며 푸짐하다. 오대산종은 날렵하고 주름이 거의 없고 매운맛이 강하다. 산마늘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날로 밥을 싸서 먹으니, 마치 생마늘을 먹은 듯 매운맛이 오래 남는다. 우리 역사에서 곰과 호랑이가 먹었던 마늘은 지금 우리가 상식하는 마늘이 아니라 이 산마늘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명이, 즉 산나물은 효용이 많은 나물이다. 봄나물답게 데쳐서 들기름과 간장, 통깨로 버무리면 아주 맛있다. 그냥 쌈도 좋다. 밥을 놓고 된장이나 올리면 알싸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국을 끓여도 건더기가 넉넉해서 맛있고, 장아찌로는 최고의 재료다. 말려서 건나물로 요리해도 좋고, 밥에 두어 먹으니 곤드레나물밥처럼 쌉쌀하게 맛이 좋다.

요즘 평창 말고도 홍천 등 강원도에서는 특용작물 재배량이 크게 늘고 있다. ㎏당 몇 만원씩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고급 나물인 셈이다. 값이 좋으면 금세 재배량이 늘어나는 게 우리 농산물 시장의 실정인데, 적당한 값에 이런 맛있는 나물을 철마다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동계올림픽을 해서 이 평창의 산촌과 지역민의 경기를 얼마나 살려줄지 모르겠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봄이면 나물이 자라고 꽃을 피운다. 봄은 짧다. 더 깊어져서 여름이 오기 전에 한번씩 다녀오시기 바란다. 차창 밖으로 봄바람이 아주 제법이니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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