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설탕 원죄론, 방향을 잘못 잡았다

당이 시끄럽다. 선거철 정당(黨)은 아니고, 당(糖)이다. 우리가 음식을 너무 달게 먹고 있으며, 당이 건강에 안 좋다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당은 우리 생명의 기본 조건이다. 당이 없으면 죽는다. 설탕 안 먹으면 죽는다고? 물론 설탕도 당이지만, 여기서는 세포의 에너지원인 당을 말한다. 같은 당이라도 어떻게 섭취하는가를 놓고 봐야한다. 청량음료와 가공식품, 과다한 곡류 섭취 같은 당이 문제다. 심지어 과일도 많이 섭취하면 당을 ‘올린’다. 중년여성의 지방간은 주요인이 과일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당 문제는 유명한 텔레비전 요리사 백종원씨 때문에 촉발됐다. 과다한 설탕 섭취에 대한 지적은 늘 있어왔다. 그가 프로그램에서 ‘설탕 투하’를 즐기면서 반작용으로 그 위험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당 문제는 단순히 설탕 사용량 문제만은 아니다. 백미 중심의 식사, 고과당이 들어가는 음료(주스도 마찬가지다)도 피해갈 수 없다.

설탕은 이른바 ‘삼백’의 위험에 해당한다. 흰쌀밥, 소금, 설탕이 그것이다. 일본에서 오래전에 이 해악론을 펴는 이들이 있었고, 한국에도 전파되었다. 설탕은 본디 귀하고 비싼 식품이다. 한국인 최초의 이민이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이민이며, 미국과 카리브해의 흑인 노예 강제노동의 ‘흑역사’에도 설탕이 개입되어 있다. 일본이 오키나와와 규슈지역을 수탈했던 배경에도 설탕이 있다. 1970년대까지 선물로 돌리던 값진 설탕이 이제는 국민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규탄받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텔레비전에서는 그 달콤한 유혹의 설탕을 ‘투하’하는 방송이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아이러니는 금기의 해방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설명이 간단해진다. 나쁘다고 하니, 오히려 그것을 잔뜩 넣은 음식 방송에 자신도 모르게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사실 여기에 있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나는 예전에 이미 설탕 문제의 핵심을 말한 적이 있다. 이른바 한국 조리기능사 실기 시험에 설탕이 ‘필수요소’인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한식조리사 실기시험을 치자면 정해진 메뉴를 반복 학습해야 하는데, 기본으로 들어가는 양념 공식에 설탕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간장 얼마, 설탕 얼마, 고춧가루 얼마 하는 식이다. 요리사가 되기도 전에 설탕을 양념에 배합하는 기술부터 익히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결국 식당에서, 학교급식장에서 요리를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사먹는다. 알게 모르게 이미 다량 들어간 설탕에 의해 우리 입맛이 지배되고 있다고나 할까.

학교에서 청량음료를 추방하고, 인스턴트식품을 멀리한다는 운동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적다. 일상의 음식에 의해 길들여진 우리 입맛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다. 한 가지 더. 설탕 나쁘다고 물엿이니 올리고당이니 하는 것으로 대체하곤 하는데, 그게 그거다. 설탕을 안 쓴다는 심리적 효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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